[지지대] 그 옛날 조합장賞
[지지대] 그 옛날 조합장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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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졸업식이었다. 이런저런 상장이 주어졌다. 제일 먼저 호명한 상이 기억난다. 교육감상이다. 메달을 걸어줬다. 다음이 교육장상이었다. 내가 받았다. 메달이 없어 서운했다. 시상식은 계속됐다. 군수상, 육성회장상(운영위원장상), 지서장상(파출소장상), 예비군중대장상…. 반(班) 아이들 절반 가까이가 상을 받았다. 그 속에 농협조합장상도 있었다. 아마 영어사전을 부상으로 줬을 것이다. 모서리에 ‘賞’자가 찍혀 있었을 것이고. ▶국민(초등)학교 졸업식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철모르던 아이가 세상을 경험한다. 계급(階級)과 서열이다. 상장 주는 순서에서 그걸 인식한다. 동네 아저씨였던 조합장의 위력을 그때 확인했다. 단상에서 상 주는 사람이었다. 일장훈시를 하는 사람이었다. 더는 동네 아저씨가 아니었다. 그 후로는 절로 고개를 숙였다. 추억 속 조합장이 그랬다. 늘 양복차림이었고, 온 동네의 만능해결사였다. 그 집에만 붙는 고유명사까지 있었다. ‘조합장님댁’. ▶어른이 돼서 깨달았다. 조합장의 힘은 막강했다. 고액 연봉을 받는다. 직원 인사권을 갖는다. 업무추진비를 쓴다. 각종 사업 추진권을 갖는다. 여신 업무를 총괄한다. 대출한도ㆍ금리조정을 좌우할 수 있다. 간섭도 받지 않는다. 대의원 총회, 이사회, 감사가 있다. 조합장의 전횡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다. 하지만, 유명무실하다. 맘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이른바 ‘견제받지 않은 무한 권력’이다. 졸업식장의 시상식 순서, 그 이상의 힘이었다. ▶나쁜 짓도 보게 됐다. 출장비 명목으로 공금을 횡령한다. 대출 이자를 낮춰주고 금품을 받는다. 가족을 직원으로 앉혀 인건비를 챙긴다. 사업을 추진하며 수천만원을 받는다. 최근 4년간 적발된 비리 유형이다. 선거에도 불법은 숱하다. 적게는 10만원에서 많게는 600만원까지 돈을 뿌린 후보자들이 적발됐다. 양주·버섯 세트에 쌀 포대까지 돌린 후보자도 있다. 이번 선거에서 500건이 적발됐고, 126건이 고발 또는 수사의뢰됐다. ▶농협조합장은 가장 한국적인 자리다. 농민 간의 끈끈한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 농경사회에서 이만한 영예도 없다. 정관에 ‘조합원의 공동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돼 있다. 정관 속 본모습이 실종된 세상이다. 아이들에게 상장을 주던 존경받는 어른이다. ‘새 나라 일꾼이 돼라’고 훈시하던 어른이었다. 오늘 당선된 새조합장들에서 그때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푸근하고, 든든하고, 부지런했었던 ‘그 옛날 조합장 아저씨’.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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