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1월 26일 오후 6시, 전국에서 쥐약이 살포됐다. 제1회 전국 동시 쥐잡기 운동이다. 이날 쥐약을 놓은 집이 540만 가구다. 쥐약은 정부가 무료로 나눠줬다. 20일 뒤, 농림부가 결과를 발표했다. ‘4천154만1천149마리 소탕’. 지금도 농림축산식품부에 남아 있는 ‘쥐잡기 역사’다. 참여 가구 수나 방법, 결과 집계가 흡사 군사작전과도 같다. 국가가 주도한 쥐잡기운동의 효시다. ▶잡은 쥐를 어떻게 셌을까. 쥐꼬리다. 하나하나 잘라 일일이 셌다. 접수처는 학교와 관공서였다. 결국, 쥐꼬리 4천154만1천149개를 모았다는 말이다. 이후 쥐꼬리 접수가 일상화됐다. 학생들에게는 대가도 주었다. 연필 또는 공책이다. 삐라 신고와 함께 ‘쏠쏠한 학용품 수입원’이었다. 끔찍한 줄도 몰랐다. 형제간에도 쥐꼬리 쟁탈전이 벌어졌다. 쥐꼬리를 가방 가득 가져와 여자 선생님을 경악하게 만든 녀석도 있었다. ▶1970년 농림부가 밝힌 ‘쥐 통계’가 있다. -전국에 9천만 마리가 살고 있다. 쥐가 먹어치우는 식량이 한해 240만 섬이다. 곡물 총 생산량의 8%에 달한다. 돈으로 환산하면 240억원 어치다-. ‘보릿고개’로 사람이 굶던 시절이다. 쥐 잡기는 곧 양식 지키기였다. 위생 문제도 심각했다. 부엌 안방까지 쥐가 다녔다. 잠자다가 공격을 당한 친구도 있다. 얼굴에 난 부스럼을 쥐가 갉아먹다가 입술까지 깨물었다고 했다. ▶1990년대 쥐잡기가 사라졌다. 쥐 개체 수가 급격히 줄었다. 급격한 도시화가 주된 원인이다. 양곡 보관법의 현대화도 한몫했다. 정부 주도 쥐잡기도 그즈음 없어졌다. 그러던 쥐가 요사이 다시 등장했다. 특히 도심 속 쥐가 상당히 늘었다. 따뜻한 지하 공동구, 널려진 음식물 쓰레기가 원인으로 꼽힌다. 그렇다고 쥐잡기에 나설 필요는 없다. 관공서에 신고하면 알아서 해준다. 쥐꼬리를 셀 필요는 더더욱 없다. ▶안산시 관내에서 ‘쥐 민원’이 이어졌다. 관할 보건소가 쥐약을 뿌렸다. 이때 안전조치를 안 했다. 주민들의 항의가 이어졌다, 동물 보호단체도 나섰다. 보건소 측이 사과했다. ‘다음부터 잘 하겠다’고 했다. 조심 좀 하지…. 1970년에도 조심히 다루던 쥐약인데…. 당시 나붙었던 포스터에 이런 경고 문구가 있었다. ‘가장 안전한 쥐약입니다만 개 또는 닭이 직접 먹지 않도록 유의하시고, 음료수는 뚜껑을 꼭 닫아 주십시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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