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의 조용필, 歌王 꿈 키운 ‘라스트찬스’ 문화재로 지정을”

어린 조용필 추억의 무대, 장파리에 있었던 미군클럽 건물
역사·애환 간직… 등록문화재 등재 지역문화계 한목소리

1964년 이전 오픈해 1970년대 중반까지 DMZ 주둔 미군 백인 전용클럽으로 사용됐고 가왕 조용필이 무명시절 노래를 불려 당시 아픈 역사와 가치가 있어 근대등록문화재로 등재여론이 있는 라스트찬스. 김요섭기자
1964년 이전 오픈해 1970년대 중반까지 DMZ 주둔 미군 백인 전용클럽으로 사용됐고 가왕 조용필이 무명시절 노래를 불려 당시 아픈 역사와 가치가 있어 근대등록문화재로 등재여론이 있는 라스트찬스. 김요섭기자

6ㆍ25전쟁직후 DMZ(비무장지대) 주둔 미군장교전용클럽으로 가왕 조용필이 무명시절 기타치며 노래했던 파주 장파리 ‘라스트찬스’ 건물을 근대 등록문화재로 등재하려는 움직임이 지역문화계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 어디서도 볼 수 없었던 획기적인 실내장식과 외형 등을 갖춘 이 건물은 지금까지 원형대로 보존돼 미군과의 얽힌 기억 등 파주지역의 역사적, 문화적 가치가 널리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24일 파주지역 문화계에 따르면 6ㆍ25전쟁이 끝난 1950년대 말~1960년대 초 사이 DMZ에 미군들이 주둔하면서 파평면 장파리 임진강 건너편에도 미육군 제2사단 28연대소속 1개 대대 등이 주둔했다.

이들은 1960년대 초부터 DMZ로 연결된 북진교(리비교)를 오가며 휴가나 외출을 한 뒤 복귀할 때에는 어김없이 리비교 근처에 자리잡았던 라스트찬스와 불루문홀 등 미군전용 클럽을 찾았다. 클럽 주인들은 미군들을 상대로 술과 노래를 제공했는데 당대 국내 가수들 중 이 미군 클럽을 거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라스트찬스는 미군 백인장교 전용클럽으로 활용되면서 가왕 조용필의 무명시절을 살펴 볼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장소로 유명하다. 조용필은 이곳에서 1968년께 서울경신고교를 졸업한 직후 10대 후반~ 20대 초반 장파리 라스트찬스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가왕의 꿈을 키웠다.

이 건물은 전쟁이 끝난 뒤 파주군이 건물일제조사 때 양성화한 1964년 이전에 만들어져 미군을 상대했는데 5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당시 추억과 온갖 사연 등을 품으며 외형 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건물안 ‘ㄷ’자 모양의 벽면에는 이집트와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와 헤라클레스 등이 부조로 장식된 벽화 10여점이 훼손 없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등 1960년대 당시로썬 획기적인 실내 장식으로 미군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러나 라스트찬스는 1970년 중반 미군 철수로 장파리 경기가 쇠락하던 시기부터 이후 40여년 동안 방치돼 있다가 한 설치작가 겸 화가 부부가 임대받아 1960~1970년대 내부모습으로 꾸며 작품과 함께 악기를 비치해 가수 전인권 등을 초청한 기념공연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최근 영업을 그만 둬 현재는 비어 있다.

이윤희 파주지역문화연구소장은 “DMZ에 인접한 장파리마을은 1950년말~70년중반 파주의 아픈 사연과 흔적 등이 겹겹이 축척돼 파주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되는 건물들이 상당수 있다”면서 “라스트찬스도 생생한 역사와 가치가 높은 건물 중 하나로 근대등록문화재로 등재해 원형 보존에 소홀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파주=김요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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