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부터 시행… 취업규칙에 ‘방지책’ 의무화 대책 분주
기준 불분명하고 처벌 규정은 자체 결정… 실효성 의문
시흥시에 있는 한 가구제조업체 대표 P씨는 최근 직원들과 대화하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지난해 직장 내 갑질 논란과 더불어 오는 7월부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 시행을 앞두고 있어서다. P씨는 “괴롭힘에 대한 기준이 애매해 직원 간 괜한 오해를 살까 봐 직원들에게 마스크를 나눠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P씨의 회사는 괴롭힘 방지법에 대비하고자 다음 달부터 주기적으로 사내 교육을 하기로 했다.
성남시 소재 A 소프트웨어 개발업체는 임직원들 간에 ‘상무님’ ‘부장님’ 대신 영어 이름으로 부른다. 영어 이름을 사용함으로써 호칭과 직급 구분을 파괴해 권위적 조직문화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구책이다. A 업체는 이 제도를 통해 ‘상명하복’ 식의 수직 구조가 아닌 수평적인 문화 정착을 기대하고 있다.
이곳의 공동대표인 L씨는 “작년부터 미투운동과 갑질 등이 화두에 오르면서 직장 분위기가 확 변하기 시작했다”며 “갑질 파문으로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아 제도를 도입했고, 직원들의 호응도도 높다”고 설명했다.
주52 시간 근무제 등 급변하는 기업문화에 얼어붙은 기업들이 이번에는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에 대한 대책 마련에 서두르고 있다.
24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법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오는 7월 시행된다.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은 취업 규칙(사내규정을 명시한 문서)에 직장 내 괴롭힘 방지책을 의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6개월 내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과태료가 부과된다. 상사로부터 괴롭힘을 받은 근로자의 신고를 받은 사업주는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이를 어길 시 고용부가 감독에 나선다. 특히 피해자에게 신고를 이유로 해고 등 불이익을 주면 형사처벌도 가능하다.
고용부는 최근 마련한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및 예방ㆍ대응 매뉴얼’을 통해 직장에서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람이 업무와 상관없이 부하 직원에게 신체ㆍ정신적 피해를 줬다면 이를 괴롭힘으로 봐야 한다고 명시했다.
이런 상황 속에 마땅한 처벌 규정이 없어 실효성이 없다는 우려도 나온다. 기업이 자율적으로 예방책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처벌 규정은 당초 국회 논의 과정에서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한 기준이 모호해 기업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한 중견기업에 재직 중인 K씨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 매뉴얼을 보면 ‘사회 통념상 업무 범위가 아닐 경우’라는 기준을 제시했는데 이는 해석마다 다른 판정이 나올 소지가 있지 않겠느냐”며 혀를 찼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 교수는 “반쪽짜리 법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더욱 구체적인 매뉴얼과 엄중한 처벌 규정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혁준ㆍ김해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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