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금고는 국민 세금을 관리하는 곳이다. 도 금고의 경우는 도비를, 시ㆍ군 금고의 경우는 시ㆍ군비를 관리한다. 그 규모가 경기도는 20조원, 시ㆍ군은 수천~2조원에 달한다. 여기에 각 기관 소속 공무원이 잠재적 고객이다. 이래저래 금융기관은 군침을 삼킬 수밖에 없다. 그만큼 금고 선정과정의 경쟁이 치열하다. 금융당국이 이 경쟁이 심하다고 판단, 과열 방지를 위한 규제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금융당국은 칼을 빼든 중요 이유 중 하나로 과도한 사회기여금을 지목했다. 신한은행의 경우 작년에 인천광역시청에만 120억원을 냈다. 산하 구청 7곳에도 8억7천500만원을 냈다. 기업은행은 수원시에 86회에 걸쳐 모두 54억원을 냈다. 농협이 지출한 지자체 협력 사업비는 연간 500억원이 넘는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서울시 1금고 은행으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무려 3천50억원의 협력사업비를 써내기도 했다.
과거 지자체 금고는 지자체와 금융기관이 수의계약으로 정했다. 2000년대부터 공개입찰방식으로 바뀌었다. 수의계약에 따른 특정 금융기관의 독점, 수의계약 과정의 탈불법을 막겠다는 취지였다. 바로 이런 개혁이 부른 부작용이 과도한 경쟁이다. 선정 배점에 명시된 사회기여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다. 금융당국의 이번 개혁은 이 배점을 낮춤으로써 사회기여금이 미치는 영향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과연 옳은가. 현실에 맞는 판단인가. 의문이 있다. 금융기관이 내는 사회기여금은 시ㆍ도비 예치에 따른 일종의 이익 환원이다. 아무리 많은 기여금을 낸다 해도 이 이익의 범위를 넘어서지는 않는다. 또 사회기여금 내지 협력사업비가 현행법상 저촉되는 어떤 근거도 없다. 그런데 금융당국이 대단한 비리 온상이라도 되는 양 칼을 뽑아들었다. 일부의 사실을 전체로 해석하는 전형적인 일반화의 오류다.
척결해야 할 탈불법은 따로 있다. 신한은행의 한 지점장이 사법처리됐다. 인천시 금고 선정에 쓰려고 억대 회삿돈을 횡령했다. 민선 4기 한 시장이 논란에 휩싸였었다. 시 금고인 농협 측으로부터 상품권 등을 받았다. 민선 5기 이전의 많은 시장ㆍ군수들이 특혜대출을 받았다. 시 금고로 선정된 은행에서다. 경계해야 할 진짜 비위는 이런 것들이다. 이런 비위는 투명한 선정과 엄격한 법적용으로 가능한 일이다.
금융기관만을 위한 규제시도라는 지적이 많다. 고객 또는 지자체가 아니라 금융기관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라는 해석이다. 아직 본격적인 규제안이 나오진 않았다. 시간은 있다. 금융당국이 좀 더 다양한 목소리를 들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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