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한자와 동아시아 문화의 전통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올 일이 있었다. 근처 전통마을 등람 지역을 돌아보고 한 고즈넉한 고택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장이 서예를 하는 분이었다. 꼭 한옥같이 생긴 곳에서 여러 서예 작품들을 보고 있자니 고향에라도 온 느낌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시(漢詩) 한 자락이 문간에 적혀있었다. 내가 읽기 시작하자 주인장이 반가워하며 함께 읽어 내려갔다. 나는 우리 발음으로, 주인장은 베트남 발음으로 읽어가는데 마치 화음을 맞추듯 즐거웠다.

옛 베트남은 중화 질서의 한 축이었다. 당연히 모든 글은 한자로 쓰고 읽었다. 프랑스가 침탈하여 알파벳으로 표기를 시작한 이래 100여 년이 지나, 이제는 많은 베트남인이 한자를 읽지 못하지만, 베트남이 같은 한자문화권임은 분명하다. 현대 베트남의 국부인 호치민(胡志明)은 한시(漢詩)도 즐겨 썼다. 베트남 전통 유물 곳곳에서 한자를 만날 수 있다. 글자의 소리는 다르지만 뜻은 그대로 통한다. 지금도 베트남에서 한자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우리와 훨씬 더 많은 문화적 유대감이 생기리라 생각했다.

열도의 나라에서 한자를 만나니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이 얼마나 광대했는가를 실감할 수 있다. 동시에 한자가 지닌 생명력도 확인하게 된다. 상형문자요, 뜻글자인 한자는 바로 그래서 다양한 발음으로 아주 넓은 지역에서 사용될 수 있었다. 글자 하나를 놓고도 지린의 발음과 쓰촨의 발음이 다르고, 베이징의 성조와 광둥의 성조가 다르지만, 그래도 뜻은 통한다. 조선 시대 연행(燕行)을 간 선비들은 비록 중국어에 능통하지 못했지만, 필담(筆談)을 통해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었다. 필담은 그대로 속기록이 되어 당시의 대화를 그대로 후대에 전하는 이점까지 있었다.

사실 근대 이후 서구에서는 한자를 매우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었다. 언어의 발전 경로를 상형에서 표의, 표의에서 표음으로 보았을 때, 서구는 이미 표음언어체계를 구축한 데 반해, 중국은 아직도 잘해야 표의문자, 심지어는 상형 문자를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구의 지식인들이 중국을 정체된 국가, 발전 없는 제국으로 설명할 때 그 근거로 한자를 들곤 했다.

그러나 그것은 거대 문화권의 역설을 읽지 못한 서구 지식인들의 편견이었다. 동아시아 문화권의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소통이 필수였고, 방대한 지역의 실제 표음 구조를 넘어서려면, 역설적으로 문자는 그대로 표의와 상형의 상태에 머물러 있어야 했다. 나라 국(國)을 ‘국’으로 읽건, ‘구어’로 읽건, ‘꾸옥’으로 읽건 의미가 통할 때 동아시아는 서로 소통할 수 있었다. 만약 한자가 표음문자로 변모했더라면 동아시아는 유럽처럼 수많은 나라로 쪼개졌을 것이고, 동아시아의 거대한 문화권은 일찍이 사라졌을 것이다. 표의문자에서 표음문자로 나아가는 것은 발전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였다.

동아시아 질서의 언어로 한자가 선택되고 유지된 것이 잘 된 일이지 아닌지, 그 거대한 문명사적 의미를 이야기하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다. 다만 분명한 것은 여전히 작동하고 있는 한자 문화 속에서, 한자를 통해 매우 오래되고 아주 광범위한 문화 전통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한자를 읽고 한자로 소통하는 것은 그저 지루한 공부의 일부가 될 수는 없다. 그것은 수천 년 동아시아 역사에 발을 담그는 일이며, 그 문화 전통의 일부가 되는 행위이다. 등람의 주인장과 내가 한시를 같이 읽으며 함께 웃을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점에서 비롯한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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