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읽어주는 남자] 무화과 숲
[시 읽어주는 남자] 무화과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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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숲

                  - 황인찬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들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구관조 씻기기》, 민음사, 2012

‘무화과’(無花果)는 꽃받침이 항아리처럼 급속히 비대해져 열매가 되는 바람에 꽃이 그 안에 갇혀 마치 꽃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잎이 변해 만들어진 꽃받침은 꽃을 받쳐주고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무화과의 꽃받침은 꽃을 받쳐주지 않고 열매가 되어 어린 꽃을 꿀꺽 삼켜버린다 하니 참으로 낯설다. 그 사정을 알게 되니 문득 ‘갇힌 꽃의 심정은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런 마음의 갈피를 김지하 시인은 “이봐/내겐 꽃 시절이 없었어/꽃 없이 바로 열매 맺는 게/그게 무화과 아닌가/어떤가/친구는 손 뽑아 등 다스려주며/이것 봐/열매 속에서 속꽃 피는 게/그게 무화과 아닌가/어떤가”(<무화과>)라고 헤아린다. 그의 헤아림은 삶이란 ‘겉꽃’의 화려함이 아니라 조용히 ‘속꽃’을 피우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넌지시 일러준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화려하지도 않은 일상의 면면들이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속꽃’일 것이다.

황인찬의 <무화과 숲>은 김지하 시인의 시에 표현된 ‘속꽃’의 삶이 무엇인지를 담담하게 보여준다. 쌀을 씻어 밥을 먹는 일, 그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저녁에는 저녁을 먹는 것, 그리고 잠자리에 들어 한 폭의 단 꿈을 꾸는 일상의 순환은 화려해보이지 않지만 진실하다. 타인을 짓밟고 얻은 명성과 성공은 화려하지만 덧없다. 그런 시간은 겉꽃처럼 쉽게 진다. 쌀을 씻다가 ‘창밖’을 보는 망연함의 순간은 일견 초라해 보일 수 있다. 고급차를 타고 가정부를 부리며 사는 화려한 순간과 종종 비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망연의 시간은 그지없이 아름답다. 일상의 귀중한 것들을 돌아보게 만들고, 너무 단순해서 생각해보지 못한 주변의 것들의 의미를 새로이 생각해보게 하기 때문이다. 아침과 저녁을 먹고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을 꾸는 일상의 흐름들. 우리는 그런 자잘한 흐름들을 산다. 소소하지만 아름답고, 반복되는 듯하지만 내밀한 시간들이 ‘속꽃’처럼 피어있는 곳, 그곳이 바로 ‘무화과 숲’이며 황인찬 시인이 생각하는 유토피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의 유토피아는 ‘숲으로 이어지는 길’로 들어갔던 사람들이 다시 나오지 않는 ‘옛날’의 시간을 떠올리기보다는 쌀 씻어 밥을 먹는 현재의 일상에 있어 보인다. 그래서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저녁에는 저녁을 먹는다는 시인의 단순한 진술이 큰 울림을 준다.

길을 걷다가 줄장미 늘어선 어느 골목의 담벼락을 망연히 바라보는 작은 시간들이 삶을 아름답게 만든다. 행복의 꽃은 무화과 속꽃처럼 그렇게 일상의 안쪽에서 조용히 핀다.

신종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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