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의 북쪽은 두만강에서 압록강이 백두산을 경계로 동과 서쪽으로 흐르고 있다. 이 경계는 현재 한반도가 외부 세력과 접하고 있는 경계선이 된다. 과거 고대와 중세의 역사와 근대사에서 이 강역은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동토는 아직도 한반도를 남북으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민족과 왕조간에 국가와 이데올로기적 마찰은 인간 기본정신인 서로에 대한 이해와 교류를 제한하고 있다.
물이 흘러 고이면 도랑이 만들어지고 이는 시내와 강으로 이어지는 것인데, 인간이 만든 제재는 도랑을 막고 강을 막고 사람의 정과 교류를 막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고 분단된 대만과 교류를 시작할 때, 홍콩과 대만의 많은 사람들은 ‘가난한 사회주의 인민’이라고 중국 국민을 무시했다. 그러던 중국이 북경올림픽을 개최하며 경제발전의 기적을 이루어내자 이제는 모든 국가나 국민들이 이들과 교류하기를 희망한다. 심지어 중국의 발전이 도약의 단계가 되자 미국은 중국을 봉쇄하는 전면전을 펼치고 있다. ‘죽의 장막’이던 중국이 이제 세계 생산 및 소비의 정글이 된 것이다. 이렇게 봉쇄와 개방, 교류와 마찰은 서로 교류하는 관계에서 필연적인 과정인 것 같다. 공자의 말에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다”라고 했는데, 이는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덕으로 교류하면 주위에 친구가 늘고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말과 같은 것이다.
북한이 사회주의 전제체제에서 왕조와 같은 국가체제를 유지하며 무력을 통한 대내외 경성권력을 강화하고 심지어 핵무력을 동원해 같은 민족인 한국을 위협하는 것은 덕이 부족한 행위이다. 그러나 일한 덕이 부족한 북한과 대립하고 있는 한국이 ‘강 대 강’의 대치로 덕을 베풀지 못한다면 우리는 덕과 사랑으로 이웃을 감화시킬 수 없어 대립은 더욱 강화대고 대립은 더욱 고착화 될 것이다. 한국의 북한에 대한 교류와 제재는 덕과 사랑이란 인본주의적 포용력과 국제세계질서의 균형적 제재가 같이해야 할 것이다.
두만강 방천에서 압록강 하구 단동을 다니다 보면 남북보다는 비교적 교류가 활발한 접경지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이 교류하는 입장이 이데올로기적 동맹과 인본주의적 이해가 같이하는 것에 우리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한미동맹으로 국제사회와 공조하는 한국에게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온정은 또 다른 의미의 연성권력이라는 것을 생각해볼 만하다.
요동치는 세계경제와 한반도 국제정세에서 우리는 항상 우리가 어디에 위치해 있으며 동북아지형은 어떤 지정학적 특징이 있으며, 한미동맹과 한미일 협력 그리고 한중일 삼각관계는 어떤 역사적 과정, 이데올로기와 실용 그리고 어떤 국제관계를 지금 형성하게 했는지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은 단지 상상의 꿈이 아니라 우리가 걸어가야 할 미래다. 기계와 수치적 계산으로 친구를 얻을 수 없다. 이데올로기와 사상만으로 대립에서 통합으로 가기 어렵다. 같이 하는 마음과 미래에 대한 비전으로 현실 정치적 장래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는 한반도의 평화와 발전 그리고 자손들의 미래비전과 관계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항상 우회전만으로 혹은 좌회전만으로 혹은 직진으로만 서울에 평양까지 관통할 수는 없을 것이다. 기름도 넣어야 하고 장애물도 피하거나 해결하면서 트렁크에 온정을 가득 담아 상대방을 감동시켜야 길이 더욱 넓어질 것이다.
김진호 단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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