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자전거 정책이 붐을 이뤘더랬다. 교통지옥을 해결해보자는 목적이었다. 여기에 건강 증진이라는 효과도 있었다. 정부가 앞장섰다. 강운태 내무부 장관(1997년)은 관용차 트렁크에 자전거를 싣고 다닐 정도였다. 퇴임 후에도 그는 ‘자전거사랑 전국연합회’ 회장을 맡으며 애정을 보였다. 그 무렵 수원시에서도 자전거 정책이 있었다. 고(故) 심재덕 당시 시장이 직접 자전거로 출퇴근하며 본을 보였다. ▶그러나 정착은 어려웠다. 자전거 인구가 늘지 않았다. 여전히 동호회 중심의 레저 운동 수준이었다. 투입한 예산도 밑 빠진 독이었다. 수십억원씩 들인 자전거 도로가 방치됐다. 공용 자전거 태반은 곳곳에서 사라졌다. 남은 자전거도 먼지 쌓인 흉물이었다. 녹슨 거치대가 여기저기 버려졌다. 현장에서는 ‘우리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렇다고 자전거 행정이 사라진 건 아니다. 지금도 자전거 생활화는 행정의 주요 목표다. 예산도 여전히 투입되고 있다. 포기할 수는 없는 미래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그 희망을 요즘 수원에서 본다. 넥타이 차림의 자전거 이용자들이 늘었다. 젊은 여성들의 자전거 이용도 많다. 그런 모습이 전혀 어색하지도 않다. 느낌뿐이 아니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수원시가 설문 조사를 했더니 휴일보다 평일의 자전거 이용률이 높았다. 출퇴근, 등하교 시간 때 이용률이 특히 높았다. 버스나 택시로 채울 수 없는 단거리 교통수단, 즉 제3의 대중교통이 되고 있는 것이다. ▶거저 된 게 아니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민간의 혁신적 아이디어를 도입했다. 세계적인 전문 업체가 맡았다. 앱을 통해 모든 게 관리된다. GPX로 모든 자전거의 위치도 파악한다. 거치대를 따로 찾아다닐 필요도 없다. 이용한 뒤 아무 곳이나 세워 놓으면 된다. 그러면 업체가 알아서 재배치해 놓는다. 2018년 1월부터 도입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시는 당초 80억원으로 예상했던 공영자전거 사업비도 절약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있다. 성숙한 시민의식이다. 5월 말 현재 어플 가입자 수는 28만여 명이다. 어린 아이와 노약자 등을 제외하면 수원시민 2~3명당 한 명꼴이다. 그런데 자전거가 없어지지 않는다. 파손ㆍ도난율이 3%다. 해당 업체가 사업하는 도시는 세계 200여 개다. 평균 파손ㆍ분실률이 30% 정도라고 한다.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다. 업체 측도 수원시민의 이 같은 의식 수준에 놀라움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위대한 시민이 위대한 역사를 만든다고 했다. 아름다운 자전거 도시는 시민의 아름다운 의식이 만드는 것이다. 수원시가 주황색 자전거 물결로 덮여가는 데는 그럴만한 시민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수십 년간 자리 잡지 못한 자전거 생활화 행정, 수원이 중요한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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