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달 들어 갑자기 중국의 비자 발급 절차가 엄격해졌다. 중국 한 대학에서 2주간 연수를 받아야 하는 우리 학생들이 출국 준비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짧은 연수라 작년까지는 여행 비자로 다녀올 수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장기 유학생에게나 해당되었던 서류를 모두 준비해야 한다. 게다가 서명 대신 도장을 찍어야 해서, 태어나 도장을 찍어본 경험이 없는 학생들이 졸지에 막도장 하나씩을 가지게 되었다.
뉴스를 보니 우리나라에서 중국을 찾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이 불편해진 모양이다. 상용비자의 경우 체류 기간의 일정을 일일이 적고 명함을 제출해야 하고, 관광비자의 경우도 호텔의 영문명, 전화번호까지 기재해야 한단다. 물론 도장을 찍는 것도 불편에 한몫 거들고 있다.
중국 정부가 왜 비자 발급 절차를 엄격하게 하는지 설왕설래다. 대개 언론들은 미중 무역 전쟁의 여파라고 짐작하는 모양이다. 물론 우리 정부에서는 이를 부인하고 있지만 말이다. 중국 지인의 이야기로는 중국이 올해 건국 70주년을 맞으면서 안팎으로 질서를 엄정히 하고 여러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라고 한다. 어느 것이 진짜 원인인지 콘텐츠를 가르치는 나같은 서생이 정확히 파악할 도리는 없다. 확실한 것은 중국 정부의 큰 그림 속에 민초들은 그것이 뭔지 정확히 모른 채 낯선 일의 파도에 떠밀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고 보니 중국은 큰 그림의 나라, 거시(巨視)의 삶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우선 국가의 발전에 대한 큰 계획이 명확하다. 공산당 창건 100년 안에 샤오캉(小康) 사회, 삶의 질이 보장된 중진국에 들어서고, 건국 100년 안에 다퉁(大同) 사회, 모두가 잘 사는 선진국에 들어서는 것이 거시 목표이다. 덩샤오핑이 1987년 목표를 제시한 이래 지금까지 변함이 없다. 한 나라가 백년대계를 세우고 간단없이 노력한다는 것은 부러운 일이다. 실제로 중국이 목표에 맞춰 발전해간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게 마련이다. 국가백년대계를 함께 하는 미시(微視)의 삶, 개인의 삶에 대한 관심은 그 큰 계획만큼 세밀하지 못한 것 같다. 물론 워낙 인구가 많아 관리하기가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검색을 당해야 하는 일상을 떠올려봐도 좋다. 사고 없는 나라라는 대의는 중국에서 생활하는 모든 사람들의 일상적 불편을 야기한다. 통일 중국의 이상은 드넓은 중국 대륙을 하나의 시간대로 묶는다. 베이징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지역 개개인의 생체리듬과는 맞지 않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건강한 사회를 위해 콘텐츠를 만들 때 여러 금기 사항을 마음에 새기게 만든다.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건 아니건 불순한 소재는 드라마나 영화에 등장해서는 안 된다. 현실의 세세한 감수성을 포착하는 것보다 이상향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 보니 표현의 다양성은 다소 뒷전이 되는 듯하다.
중국은 곧 샤오캉 사회 달성을 발표하고 대동 사회로 나간다고 선언할 것이다. 중국의 대동 사회는 이제 거시의 삶뿐 아니라 미시의 삶도 살피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국가의 성장이 개인의 안락과 자유로 이어지는 사회, 개인이 국가 정책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가 되는 사회 말이다. 물론 그것은 우리나라에도 해당하는 교훈이다. 선진국이란 거시의 삶과 미시의 삶이 다 같이 존중되는 나라라고 믿는다. 그래서 예기(禮記)에서 대동사회를 “천하가 온 세상 사람들의 것”인 세상이라 했을 것이다.
최민성 한신대 한중문화콘텐츠학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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