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구 칼럼] 계속된 朴 시장 도발, 계속된 李 지사 침묵

차량기지·공항 피해 떠넘기려
지역민 분노에도 이 지사 침묵
행정 위한 ‘사이다 발언’은 필요

경기도민에겐 배신이었다. 다른 곳도 아닌 충청남도였다. 다른 때도 아닌 수도이전 정국이었다. 이익이 칼처럼 맞서 있던 충남이었다. 그런 곳과 상생 협약을 들고 나왔다. 산업 클러스터ㆍ산업단지를 만들자고 했다. 경제자유구역도 함께 하자고 했다. 손학규 경기지사가 추진한 깜짝 이벤트였다. 수도이전 반대를 역설하던 그다. 그 정책의 방향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충남과 손을 잡은 것이다. 2005년 1월27일이다.

또 다른 배신이 등장했다. 모든 걸 세종시로 옮기자고 했다. 수도이전을 헌법에 새기자고 했다. 행정부는 물론, 국회와 청와대까지 다 옮기자고 했다. 이번 선창자(先唱者)는 남경필 경기도지사였다. “수도권에 인구가 너무 많이 몰립니다…여기서 부패가 생깁니다.” 듣는 경기도민 속이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얼마뒤엔 경기도를 없애자고까지 했다. “경기도를 포기하고 서울과 합쳐 더 큰 대한민국으로 나가자”. 2017년 3월 즈음이다.

도민이 화낼 일이었다. 그런데 그러지 않았다. 두 지사가 왜 그러는지 이해해줬다. 도민에게 그건 정치였다. 심대평 충남지사와 함께 한 손학규 경기지사. 그 순간은 대통령 후보군이었다. 수도이전 개헌을 말하던 남경필 경기지사. 그 순간은 대통령 경선 후보였다. 경기도민이 그걸 정확히 구분하고 있었다. 손 지사도, 남 지사도 행정에선 그러지 않았음을 인정해서였다. 도민을 위한 투쟁의 언어가 훨씬 많았었음을 알고 있어서였다.

이제 이재명 지사다. 안 그래도 정평있다. 꼭 필요한 말을 꼭 집어 말한다. 2010년, 부채 투성이 시정(市政)을 넘겨받았다. ‘모라토리엄을 선언한다’고 했다. 거덜난 살림을 알린 더 없는 언어였다. 2014년, 국정원의 이석기 사건에 휩쓸려 갔다. ‘국정원 사찰을 규탄한다’고 했다. 정치적 위기를 뒤집은 극적인 언어였다. 2016년, 박근혜 국정 농단에 모두가 분노했다. 그때 ‘박근혜 구속’을 처음 말했다. 다들 그의 언어를 ‘사이다’라고 했다.

이런 그의 입을 자극할만한 일이 이어진다. 대부분 서울발(發)인데,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철도차량기지를 좋아하는 시민은 없다. 소음ㆍ공해를 유발하는 주민 기피시설이다. 이런 걸 경기도로 넘기려 한다. 구로 차량기지는 서울 구로에서 경기 시흥으로, 신정 차량기지는 서울 양천에서 경기 부천으로 옮기려 한다. 모두 5곳인데 넓이만 축구장 150개 크기다. 시흥 부천시민이 지금 난리다. 김포공항 국제선 증설 추진도 있다. 주변 서울을 잘 살게 하겠다며 그린 그림이다. 굉음 폭탄이 날아들 경기도민이 분노하고 있다.

박원순 시장이 직접 야기한 도발도 있다. 서울공항 얘기를 불쑥 던졌다. “성남공항을 민수용으로 전환해 수도권 내 수요 대비 부족한 공항 증설 효과를 노려야 한다.” 기자들 잔뜩 모인 데서 밝힌 구상이다. 서울공항은 성남 도심에 있다. 군용기 몇 대 뜨는 지금도 시민은 죽을 맛이다. 이걸 민간공항으로 만들자는 얘기다. 성남ㆍ용인ㆍ수원을 소음 지옥으로 만들겠단 것이다. 성남시민이 대책위를 만들었다. ‘망언’이라며 규탄한다.

누가 봐도 행정의 영역이다. 도민의 삶을 직접 파괴하는 일이다. 다들 이 지사가 한마디 해줄 거라 기대한다. 그런데 없다. ‘차량기지’에도, ‘공항발언’에도 없다. ‘강남 한복판에 차량기지 세우라’고 할 만도 한데…. ‘비행장 옆 옥탑방에서 살아보라’고 할 만도 한데…. 영 말이 없다. 왜 침묵하는 걸까. 대권을 향한 무시전략일까. 항소를 앞둔 재판전략일까. 아니면 우리가 모르는 다른 연유라도 있을까. 무엇이든 소용없다. 다 옳지 않다.

이건 정치가 아니다. 행정이다. 개인 일이 아니다. 1천300만 일이다. 무조건 말을 해야 한다. 경기도민 속을 시원히 긁어 줘야 한다. 그게 경기도지사의 책임이다.

짐작건대 오래가진 않을 거다. 곧 다시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의 정치언어가 불을 뿜을 때가 올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그때를 위해서라도 지금 말해둬야 한다. 정치가 아닌 행정의 언어를 성실히 쌓아놔야 한다. 그래야, 그때 도민이 이해한다. 손학규의 입-충남과 상생 선언-도, 남경필의 입-수도이전 개헌-도 도민은 못 들은 척 봐줬다. 옳아서가 아니었다. 앞서 쌓아온 행정의 언어가 많아서였다. 도민을 위한 투쟁의 언어가 많아서였다.

主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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