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한 배상판결을 하자, 일본정부는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반도체·디스플레이 분야 핵심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 리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에 대해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공표했다. 위 수출규제가 현실화하면 그동안 메모리 반도체 1위를 유지하고 있던 한국 반도체 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된다. 게다가 일본이 추가 보복에 나설 경우 화학·자동차·조선 등 다른 핵심 산업도 타격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위와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은 우리나라의 기초과학 경시다. 한 전문가는 “국산 소재가 일본산 소재를 대체하기에는 한참이 걸릴 것이고, 이러한 이유는 근본적으로 화학 등 기초과학의 한·일 격차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하지 않으면서 중장기적으로 대학과 기업이 연계하고 기초과학을 육성해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여러 명 배출시킬 정도로 기초과학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음에 반해, 우리나라 기업과 정부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 기초과학을 소홀히 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도 마찬가지이다. 기초과학을 연구할 대학원생은 입학하지 않고 있다. 기초과학을 연구하게 되면 당장 생계를 걱정하게 되니 돈을 벌 수 있는 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나무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이공계뿐만 아니라 필자가 몸을 담고 있는 법조계도 위와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법학의 이론과 기초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학생은 없어지고 시험에 출제되는 판례만 기계적으로 외우는 로스쿨생만 배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시험과목에 관계없는 순수 기초법학과목을 개설해도 수업을 듣는 학생이 없기 때문에 폐강을 하는 것이 현재 로스쿨 제도의 현실이다. 이에 발맞춰 순수 기초법학을 연구하는 학자나 교수도 자연스럽게 없어지고 있다.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음에도 그 누구도 이를 시정하려고 하지 않고 있어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현재의 상황처럼 기초와 기본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기초와 기본이 튼튼한 일본이 수출규제를 하면 꼼짝없이 당하게 된다. 개선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마찬가지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정치와 언론은 온통 일본에 대한 맞대응 보복조치 및 일본상품 불매운동에 대해서만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인 대응에 불과할 뿐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 남의 탓을 하기 전에 우리의 잘못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정부, 대학, 기업할 것 없이 현재의 문제점을 정확히 진단한 뒤 서로 연계하고 협력하여 기초학문과 기초과학을 중요시 하는 토대를 만들어 이를 발전시키고 육성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가 주는 뼈저린 교훈이다.
불현듯 약 570년 전에 만들어진 조선시대의 용비어천가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기에,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 성하도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마르지 않기에, 흘러서 내가 되어 바다에 이르도다.”
이현철 변호사·법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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