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필리핀 정부가 독일산 돼지고기 반입을 중단시켰다. 폴란드산 돼지고기가 섞여 들어온 사실을 확인하면서다. 필리핀은 지난 2014년부터 돼지 열병(ASF)이 발생한 폴란드산 돼지고기의 통관을 막고 있다. 필리핀의 조치는 돼지고기에 붙은 생산지 표지만으로는 100% 믿기 어렵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5일부터 독일산 돼지고기에 대한 현물검사를 강화했다. 아울러 ASF 검역에 대한 총력전을 시작했다.
그 현장을 본보 기자들이 가봤다. 평택항ㆍ인천항ㆍ부산항에서 도착한 수입 축산물들이 검역을 받고 있었다. 미국산, 칠레산, 오스트리아산 돼지고기들이 있었다. 지침대로라면 독일산 돼지고기는 매건 현물 검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러나 실제는 달랐다. 박스 겉면을 눈으로만 훑어보고, 성적서에 출고를 승인하는 인증을 내줬다. 냉동창고 관계자들조차 ‘형식적인 검역’이라고 귀띔했다. ‘시료 채취도 극히 일부에 그친다’고 전했다.
이번 검역 강화의 발단이 된 건 독일산 돼지고기에 섞여 들어온 폴란드산 돼지고기다. 포장지 속 내용물을 확인하는 게 기본이다. 겉 포장의 표시만 살펴볼 것이면 검역을 강화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검역이 이렇게 엉성하다 보니 문제가 된 독일산 돼지고기 ‘프로푸드’까지 제재 없이 통과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측도 현장의 부실한 검역 실태를 일부 시인하고 있다. ‘정밀 검역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해명했다.
ASF가 얼마나 무서운 돼지 전염병인지 몰라서들 이러나. 백신이 없어 치사율 100%에 달한다. 냉동육 상태에서 1천일을 버틴다. 햇빛에 건조되거나 염장된 상태에서도 300일간 살아있다. 빠른 전염 속도로 피해 지역이 대륙별로 구분될 정도다. 지난해 랴오닝성에서 발생한 이래 중국 정부가 살처분한 돼지가 113만두다. 올 들어서는 몽골(1월), 베트남(2월), 캄보디아(4월), 북한(5월)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 국경까지 다가와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검역 행정의 어려움을 모르는 바 아니다. 전수 조사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기자들이 본 검역 모습이 전부라고 단언할 수도 없다. 하지만 검역 강화를 결정하게 된 기본 여건에라도 부합하는 검역은 이뤄져야 한다. 그 정도도 간과되는 검역이라면 구호에 그친 행정일 뿐이다. 검역의 구체적인 대상과 방식을 다시 한번 환기시켜야 할 것으로 본다. 단 한 번의 침투로 대륙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는 무서운 전염병이 ASF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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