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운기 경기도 전 검도회장....국어교과서는 민족의 '혼'이 담긴 역사의 산물

일제강점기, 6ㆍ25전쟁 등을 포함한 오늘날까지 발간된 국어 고서와 근 ㆍ현대 학교 국어교과서 3천500여 권을 수집한 김운기(서지학자, 전 경기도 검도회장)씨가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우리의 얼과 정기를 지켜준 국어 교과서 희귀본들을 공개하고 있다. 김시범기자
일제강점기, 6ㆍ25전쟁 등을 포함한 오늘날까지 발간된 국어 고서와 근 ㆍ현대 학교 국어교과서 3천500여 권을 수집한 김운기(서지학자, 전 경기도 검도회장)씨가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우리의 얼과 정기를 지켜준 국어 교과서 희귀본들을 공개하고 있다. 김시범기자

“조선시대부터 구한말, 일제 강점기, 해방 그리고 현재까지…역사의 소용돌이 현장에 국어교과서는 우리 곁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언어가 적힌 활자 서적을 누구보다 아끼고 보존하는 사람. 직함 대신 ‘국어교과서 수집가’로 더 알려진 이가 있다. 정부는 물론 기관ㆍ단체도 시도하지 않았던 방대한 양의 국어교과서 수집을 30여 년간 실천해 온 김운기 전 경기도 검도 회장(62)이 그 주인공이다.

김 전 회장은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그동안 자신이 수집해 왔던 수천여 권의 국어교과서를 본보에 소개했다.

김 전 회장은 “나라의 근간이 되는 우리 글을 담긴 서적에 대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며 “정부도 발행만 했지 정작 해당 서적들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관심도 없는 상황에서 한 개인으로서 국어서적을 하나둘씩 모으기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이날 김 전 회장은 자택에 모아둔 500여 권의 한적본(韓籍本)을 공개했다.

해방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1차 교과서로 발행된 5-1 ~ 6-2 국어교과서
해방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1차 교과서로 발행된 5-1 ~ 6-2 국어교과서

 

‘천자문’, ‘류합문’, 다산 정약용이 집필했다는 ‘유형천자문’ 등 그가 공개한 한적본들은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일부 부식이 되거나 책 모서리가 닮아 없어진 상태였지만 그는 이 고서적들을 신주보물 다루듯 조심조심 바닥에 펼쳐보였다.

그가 본보에 공개한 서적 외에도 3천여 권에 달하는 희귀서적들은 서울역사박물관 수장고에 저장돼 있다.

이들 서적은 ▲조선시대 ▲구한말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1948년 대한민국 수립 이후 등 각 시대 상황에서 발행 주체가 다른 상황에서 세상에 뿌려진 각양각색의 국어교과서들이다.

김 전 회장이 이 같은 수집활동의 시작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0년대 초반 어느 여름날. 우연히 헌책방 주인이 한 묶음으로 된 한글교과서들을 고물상에 내다버리는 광경을 목격한 그는 폐지처럼 취급되는 우리 글인 담긴 서적의 현주소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에 책들 몇 권을 가져왔다.

이 연민의 마음이 김 전 회장이 한글교과서를 수집하는 계기가 됐다.

수장고에 보관하기 전 서재에 정리되어 있는 교과서들
수장고에 보관하기 전 서재에 정리되어 있는 교과서들

 

특히 이날 김 전 회장은 광복절을 맞아 일제 강점기 기간에도 가장 탄압이 심했던 1938년도에 발행된 희귀서적 보유 사실을 밝혔다. 그가 말한 서적들은 ‘초등조선어독본’ 1ㆍ2권으로, 김 전 회장은 이 서적들을 볼 때마다 일본의 말살정책 때문에 당시 교육현장에서 사용되지 못한 해당 서적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묻어난다고 속내를 전했다.

그는 “당시 조선어 사용 금지령 등 탄압이 극에 달했었던 시기에 일본이 명목상 교과서만 발행해주고 이를 교육현장에 배포하지 않았다”며 “세상 바깥으로 나왔지만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우리 역사의 안타까운 단면”이라고 읊조렸다.

김 전 회장의 국어교과서에 대한 애착과 사랑은 자신만의 수집에서 끝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60주년(2008년)을 기념해서 전체 도서전을 개최한 것을 시작으로 ▲조선시대 천자문 도서전(2014년) ▲6ㆍ25 동란 도서전(2010년) 등 테마별 도서전을 수시로 개최하며 국민들에게 한글교과서의 역사와 전통을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 오는 2020년에는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에서 조선시대 ‘훈몽서’ 도서전 개최를 앞두고 있다.

김 전 회장은 “국어는 우리 말과 글의 시작이며 그 민족의 혼이다. 우리의 얼과 혼이 담긴 국어교과서를 소중히 보존하는 일이야말로 누구나 할 수 있는 애국의 첫 번째 길”이라는 신념을 밝혔다.

 

양휘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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