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소서팔사(消暑八事)와 도시에서 여름나기
[김동언의 문화 들여다보기] 소서팔사(消暑八事)와 도시에서 여름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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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폭염도 막바지다. 아침저녁으로 다소 시원한 바람과 매미 소리가 곧 가을이 올 것이라는 희망을 주고 있지만, 지구 온난화로 해마다 여름 최고기온을 경신하는 시대를 사는 도시민들에게 여름나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오뉴월 손님은 호랑이 보다 무섭다’던 옛날에는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여름을 이겨냈을까.

조선후기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은 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방법 8가지를 ‘소서팔사(消暑八事)’ 라는 제목의 한시에 담아내었는데, 우리가 요즘 사용하는 피서(避暑)가 아니라 무더위를 불 끄듯 없애버리는 소서(消暑)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소서의 내용으로는 소나무 숲에서 활쏘기를 즐기는 송단호시(松壇弧矢), 느티나무 아래에서 그네타기를 즐기는 괴음추천(槐陰?韆), 넓은 정각에서 투호를 하는 허각투호(虛閣投壺), 대자리 깔고 바둑을 두는 청점혁기(淸?奕?), 연못의 연꽃을 구경하는 서지상하(西池賞荷), 숲 속에서 매미 소리를 듣는 동림청선(東林聽蟬), 비오는 날 한시를 짓는 우일사운(雨日射韻), 달밤 개울가에서 발 씻는 월야탁족(月夜濯足)이 있다. 8가지 방법 모두 운치가 있고 한가롭게 더위를 즐기는 모습이다. 올해에도 서울 북촌문화센터와 용인의 한국민속촌 등에서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여름을 즐겼던 조상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도록 다산의 소서팔사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운영하였다.

하지만 아파트와 빌딩 숲으로 이루어진 도시를 근거지로 생활하는 현대인들에게는 소서팔사와 같이 자연과 더불어 한가로운 여름나기가 일상생활에서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잠시나마 여름휴가를 얻어 피서를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은 그나마 다행이지만 취약계층이나 대부분의 서민들에게 소서팔사는 그저 옛날 양반들의 호사로만 보일 뿐이다.

도시에서 여름나기는 비상상황이다. 무더위가 찾아오면서 모든 지방자치단체가 잇따른 폭염 대책을 놓고 있다. 가을이 오기까지 폭염대비 비상체제를 가동해야 하는 현실이다. 서울시는 각종 무더위 사고를 관리하는 ‘폭염 상황 관리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현장을 점검하고 피해 지역 복구를 돕는다. 서울 주요 간선도로와 중앙버스전용차로에 물 청소차 160대를 운영하고 있다. 물을 뿌려 온도를 낮추고 아스팔트 변형을 막는 등 그야말로 재난에 대비하는 수준으로 여름나기를 하고 있다.

지자체들도 저소득층과 독거노인들을 위해 폭염대피소를 운영하고 있다. 구청 강당ㆍ경로당ㆍ복지센터 등의 공공시설에 잠자리를 마련하고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에어컨을 가동한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과 환자들에게 에어컨을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복지플래너와 방문간호사가 직접 방문하여 폭염에 취약한 서민들을 관리하고 있다. 올해에는 이들 대피소에서 지역 예술가들의 공연이나 영화 상영 서비스도 제공하는 등 더욱 진화된 프로그램도 찾아볼 수 있다.

자연의 현상인 여름철 폭염을 우리가 인위적으로 바꿀 수는 없다. 어떻게 슬기롭게 대처를 하느냐가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다. 옛사람들의 여름나기를 현대 도시에서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창의적인 생각으로 살아가는 문화예술계가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내년에는 ‘공연장에서 여름나기 8가지 방법’이라는 기사와 뉴스가 우리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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