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면서] 요란한 빈 수레와 꽉 찬 민주주의
[아침을 열면서] 요란한 빈 수레와 꽉 찬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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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31일을 끝으로 사개특위 활동은 빈손으로 마감됐다. 지난 4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공수처)과 검경수사권 조정법안의 패스트트랙 지정을 앞두고 국회는 난리법석을 떨며 요란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가장 모범이 돼야 할 국회가 법과 윤리를 벗어난 막장 드라마를 연출하기도 했다. 난항을 거듭한 끝에 사개특위는 7월에 출범했다. 하지만 활동시한을 2개월 연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위원회 구성을 두고 여야가 대립하면서 한 차례의 논의도 하지 않았다. 결국 예상대로 공전만을 거듭하다 사개특위는 종료됐다. 요란한 빈 수레로 끝나고 말았다.

활동 기간이 종료되면 이 법안들은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간다. 법안이 폐기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여야구도에서 사법개혁은 세월아 네월아 기약 없이 표류하게 될 것이 뻔하다. 공전만을 거듭하다 종료된 사개특위 활동의 문제점에 대한 철저한 평가와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더 나아가 정파적 이해가 첨예한 사안들을 여전히 국회에만 맡길 것이냐는 질문에 답을 찾아 나서야 할 때다.

사개특위가 다루던 사안은 국민의 눈높이에서 보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국민 10명 중 7명은 공수처 설치에 찬성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은 국민 10명 중 6명이 찬성했다. 유일하게 선거를 통해 위임받지 않은 사법부, 통제받지 않은 사법 권력에 대한 견제가 더욱 강화돼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였다. 하지만 국회의 사개특위 활동은 정치적 수사만 난무했지 국민의 기대를 철저히 저버렸다. 대의 민주주의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다.

그렇다고 시민의 주권을 위임받은 국회를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정치혐오로 대상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로마시대의 원형경기장의 검투사들의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장면을 보듯 희열을 느끼고 방관해서도 안 될 것이다. 우리는 국회가 국민을 대의하지 못하고 정치지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을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 정치혐오, 잔혹극의 온상이 어떻든 민주주의 본연의 주권자로서 시민의 권리와 역할 또한 상기해야 한다.

정치적 갈등을 해소하고 민주주의를 심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시급하다. 이에 대의 민주주의가 정파적 이해관계로 논의와 합의가 어려울 경우 주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사회적 논의를 통해 공론을 형성할 수 있는 ‘시민의회’를 제안한다. 인구학적 통계를 고려한 무작위 추첨에 의한 시민대표성을 확보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토의 진행, 결과를 반영하는 숙의민주주의 모델이다.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주는 인구비례에 의한 무작위 추첨방식으로 시민의회(BCCA)를 구성해 권고안을 만들고, 선거제도 개혁을 시도했다. 아이슬란드는 개헌을 의제로, 아일랜드는 낙태죄 폐지를 의제로 시민의회를 구성했고 실질적으로 법을 바꾸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시민사회단체, 정부기관에서 공론조사, 공론화위원회, 시민배심원제 등의 이름으로 숙의민주주의 제도운영의 경험들을 축적하고 있다.

소수 엘리트 정치인의 정치 독점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몫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대의 민주주의 제도에 무조건 믿고 맡기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정치권이 제대로 일을 수행할 수 있게 깨어 있는 시민들이 직접 명령을 내려야 한다. 그래도 정치권이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다음 총선에서 모조리 낙선시키면 그만이다. 요란한 빈 수레를 걸러내는 것, 그것 또한 민주주의다.

오현순 한국매니페스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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