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신종사기 ‘로맨스 스캠’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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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일본인 여성이 2016년 온라인 펜팔 사이트에서 시리아에 파병 온 미군 장교라고 소개한 ‘테리 가르시아’를 알게 됐다. 둘은 몇주 동안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온라인상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어느 날 가르시아는 시리아에서 다이아몬드가 든 가방을 발견했고, 밀반출을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며 여성에게 돈을 요구했다. 이 여성은 10개월간 수십 차례에 걸쳐 터키와 미국ㆍ영국 계좌로 20만 달러(약 2억4천만 원)를 송금했다. 친척·친구·전 남편에게까지 돈을 빌렸다고 한다.

가르시아는 사기꾼이었다. 모든 게 거짓말이었다. 일본 여성은 이른바 ‘로맨스 스캠(Romance Scam)’에 당한 것이다. 연애를 뜻하는 영어 단어 ‘로맨스’와 신용 사기를 의미하는 ‘스캠’의 합성어인 ‘로맨스 스캠’은 온라인에서 친분을 쌓아 믿음을 갖게 한 뒤 연애 등을 미끼로 돈을 요구하는 신종 금융사기다.

미국에서 최근 로맨스 스캠 사기단이 적발됐다. 대부분 나이지리아인으로 구성된 사기단은 80여 명으로 미국과 나이지리아 등 각국에 거주하며 사기행각을 벌였다. 이 가운데 17명은 사기 공모, 자금 세탁 공모, 신분 도용 등의 혐의로 미국에서 체포됐다. 이들은 사기에 취약한 나이든 여성이나 사업체로부터 최소 600만 달러(약 72억 원)를 사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일본 여성도 이 사기단에 걸렸다. 이들은 기업을 상대로 회사 이메일 시스템을 해킹하고, 직원 사칭 등의 범행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로맨스 스캠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다. 소셜미디어에서 영국인 남성을 가장해 여성들에게 호감을 표시하며 접근, 두 명의 여성에게 1천392만 원을 뜯어낸 3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혀 최근 실형이 선고됐다. 붙잡힌 ‘영국 남성’의 정체는 아프리카 모잠비크 난민이었다. 이 남성은 “영국 사는 남자”라며 접근했다. 관계가 진전되면서 “당신과 한국에서 살고 싶다”고 했고, 나중엔 “선물을 한국으로 보내고 싶은데 통관료를 먼저 지급해주면 한국에 가서 돌려주겠다”고 요구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런 사기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페이스북 등에서 여성들에게 무작위로 메시지를 보내 ‘시리아에서 포상금을 받은 퇴역 미군’ ‘거액을 상속받은 미국 외교관’이라고 신분을 속인 뒤 걸려드는 여성들에게 항공료·통관료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는 식이다. 로맨스 스캠 피해자 가운데는 심리적으로 외로운 중·장년층이 많다고 한다. 은퇴했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중·장년층의 노후자금은 사기꾼들의 매력적인 목표물이다. 사기 수법도 다양하고 교묘해지고 있다. ‘나는 당하지 않는다’고 과신하지 말고,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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