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민간 지방체육회장 선거 유예해야

대한민국 체육계가 때아닌 체육회장 선거 앓이로 인해 일대 혼란에 빠졌다. 내년부터 시ㆍ도지사와 시장·군수의 체육회장 겸직을 금지하는 국민체육진흥법 개정안이 시행됨에 따라 전국 1개 시ㆍ도와 228개 시ㆍ군ㆍ구 체육회는 내년 1월15일까지 민간회장 선거를 치러야 한다. 그동안 광역 및 기초 지자체장들이 당연직으로 맡아오던 체육회장 겸직을 개정된 규정에 따라 금지하고 민간인 회장으로 선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동안 선거 일정과 방식에 대해 가닥을 잡지 못하던 대한체육회는 지난 9월2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열린 제27차 이사회를 열고 ‘시·도 체육회 규정개정(안) 및 회장 선거 관리규정’을 의결했다. 이에 지방체육회가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대한체육회가 지방체육의 여건을 무시한채 일방통행식으로 결정했다며 지방체육의 자율·독립·자생권을 보장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방체육계가 반발하는 원인은 민간 체육회장 선출 방식이다. 대한체육회가 확정한 회장 선거 관리규정에 따라 지방마다 조직돼 있는 대의원을 종목단체로 확대하고 이 곳에서 민간인 회장을 선출토록 했다. 따라서 선거권을 가진 대의원 수는 기존보다 4.5배 늘어난 규모로 확대해 구성하도록 했다. 문제는 민간인 회장 선출 기한이 촉박한 것과 선거 비용, 선거에 따른 지방체육의 정치 예속화와 체육계 분열, 예산 감축 등의 후폭풍에 대한 우려다. 첫 번째 문제는 선거일정이 너무 빠듯해 부실선거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또한 광역 시ㆍ도 체육회와 기초 시ㆍ군ㆍ구 체육회의 예산 대부분을 지자체에서 지원받고 있는 현실 속에서 재정의 안정적인 지원을 위한 법안이 마련되지 않은 채 선거가 진행되는 것은 지방체육회가 가장 반발하는 이유 중 하나다.

지방체육의 정치 예속화와 체육인들의 분열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일부 체육계에서 벌써부터 거론되는 민간 체육회장 후보들의 상당수가 정치에 관여돼 있거나 정치적 색채를 띤 인물들이어서 정치로부터 체육의 자율성을 위해 개정된 법령이 오히려 체육의 정치화를 부추기는 계기가 될 우려를 낳고 있다. 더불어 지자체장 선거와 연관됐거나 전문체육과 생활체육 통합과정에서 소외됐던 체육 관계자들이 경쟁적으로 뛰어들 경우 체육인 간, 지역 간 선거 후 분열 양상이 심각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체육계에서는 전국 동시 조합장 선거시 빚어졌던 부작용과 추문이 이번엔 체육회장 선거로 옮겨져 불법과 혼탁 선거 우려가 심각히 대두되고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정치권과 대한체육회는 지방체육계의 우려 목소리를 외면한 채 밀어붙이기 식으로 민간인 선거를 강행하려 하면서 큰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또 대한체육회는 이사회 결정 사항에 대해 사전 양측이 합의했다고 발표했지만, 지방체육계는 ‘대한체육회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발끈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일부 지자체에서는 민간인 체육회장 선거를 치르지 않고 부회장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지방체육계의 반발은 단순한 기득권 유지가 아닌 법안의 모순에 대한 문제이자 진퇴 기로에 선 체육계 현실의 목소리다. 그럼에도 정치권과 대한체육회가 이를 강행한다면 그야말로 ‘권력형 갑질’이라는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라도 국민체육진흥법 일부 개정의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는 지방체육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개정안의 시행 시기를 유예하고, 안정적인 재정지원 방안 마련과 지방체육회의 자율권 및 독립권, 자생권을 보장하는 제도적 장치 마련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진정 체육계의 민주화와 정치적 독립을 위해서는 누구부터 변해야 하는지, 어떤 것들이 선행돼야 하는지를 냉철하게 되짚어야 한다.

황선학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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