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최대 명절 추석이다. 나라 안팎으로 시끄럽고 경제가 어려운 요즘 같아서는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으면 큰일 나겠다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추석만큼은 무거운 마음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이유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가족을 만난다는 기대감 덕분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요즘은 고향을 찾아 가족과 함께 명절을 보내는 젊은이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취업은 언제 하니?”, “연애는 하니?”, “결혼은 언제쯤 할 거니?” 같은 ‘꼰대스런 질문’들이 이들의 발길을 고향 대신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서관이나 카페로 향하게 하고 있다. 오죽하면 명절이면 ‘명절대피소’가 성황을 이룬다는 말이 나올 지경이다.
‘꼰대’가 별게 아니다. 내 기준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순간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나 때는 말이야”라고 무심코 던진 어쭙잖은 충고 한 마디,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말이야”라는 진심으로 포장된 교만의 한 마디가 폭력이 돼서 젊은이들의 가슴을 때린다. 물론 진정 어린 충고와 꼰대 멘트는 구분되어야 한다. 걱정하지 말자, 그 정도는 젊은이들도 구별할 줄 알테니.
걱정인 것은 우리가 아무리 조심해도 이번 추석 내내 ‘꼰대스런 정치 이야기’가 명절 밥상머리를 가득 채우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렇다. 법무부장관 후보자 이야기다.
후보자 딸이 다녔다는 대학의 학생들이 촛불을 들고 목소리를 내도 초지일관 “나 때는 말이야”라고 이야기하며 “불법은 아니다”, “지금은 틀린지 몰라도 그때는 틀리지 않았다”라고 답변하고 있다. 전형적인 ‘꼰대 답변’이다.
일반 국민들, 특히 젊은이들은 불법과 합법의 문제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공정과 불공정의 문제, 기회의 균등을 따지고 있는 것이다. ‘정의의 가치’를 독점하며 개혁적 성향을 과시해 왔던 386세대가 2030세대의 현실을 제멋대로 묵살하고 있는 것에 대한 반발이다. 새로운 권위주의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이 도전은 진보와 보수라는 정치 성향의 프레임을 넘어, 공정자유기회의 평등과 같은 철학적 가치를 기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필자는 젊은이들이 시작한 도전을 응원한다. 사회발전을 이끌어갈 새로운 세대의 등장은 대한민국이 언젠가 넘어서야 할 파도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안감 가득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2030세대에 대한 선배 세대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꼰대가 되지는 말자. 선배가 되려고 노력하자. 이번 추석을 맞이하는 다짐이다.
공재광 전 평택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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