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좋은 아빠, 나쁜 아빠, 이상한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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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터넷 세간의 주된 관심사인 한 각료 부부의 비리 의혹사건은 대한민국 아버지들로 하여금 좋은 아빠, 능력 있는 아빠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게 만들었다. 아직은 혐의에 불과하지만, 아이들을 좋은 대학에 보내기 위한 다양한 편법의 스펙 쌓기의 방법들을 접하며 참으로 보통 부모들은 자신의 무능을 절감했을지 모른다.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 유행처럼 도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할아버지의 경제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최고의 아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위기 시대’라는 말은 이제 낯선 단어가 아니다. 집에서 아버지가 설 자리를 점점 줄어든다. 밤낮없이 일해 자녀 뒷바라지를 하고, 부모를 모시고, 자신의 노후까지 대비해야 하는 삼중고를 헤아려주는 사람은 없다. 가족을 위해 희생한 대가치고는 너무 허망하다는 것이 이 시대 아버지들의 초상이다. 과거 우리 아버지들은 어떠했을까? 식민지배와 한국전쟁, 경제성장기를 거치면서 살아내는 일에 전념했다. 가정 내부의 일은 부인에게 맡기고 밖의 일에 전념하느라 자녀를 돌볼 시간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오늘의 아버지들과는 달리 가부장적 지위를 유지하며 자녀들에겐 무척 엄하고 절대적 존재였다.

정말 좋은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몇 년 전 서울시 교육감에 출마했던 두 후보자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아버지에 대해 SNS에 올린 글이 선거의 당락을 결정지은 사건이 있었다. 후보자들의 외부 평판과 달리 한 후보자의 딸은 아버지에 대해 교육감 자격이 없는 형편없는 아버지임을 알리는 충격적인 양심선언을 한 적이 있다. 물론 그 후보자는 낙마하였다. 경쟁 후보자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를 존경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글을 통해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물론, 이 아이들의 글이 오늘도 그들에게 여전히 유효한지는 모르겠다. 자녀의 부모에 대한 평가는 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의 아버지는 내세울 만한 사회적 지위나 재산을 가지지 못한 평범한 분이었다. 미대를 진학하겠다는 장남의 결정을 반대하셨고 예술보다는 출세에 유리한 전공을 택하라고 요구하는 분이셨다. 필자는 미대를 진학하고 일찍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고 나서 줄곧 화실을 차려 독립하면서 매우 힘든 삶을 살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나의 잘못된 결정으로 그리된 것이라고 나에게 냉담하셨다. 내심 서운함과 불만도 많았지만 내 결정이 그르지 않았음을 보여드리기까지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다. 아버지의 회갑 때 시골 친구 분들에게 아들이 화가임을 자랑스럽게 소개하시는 시간을 경험할 때까지 아버지가 가지셨던 나에 대한 믿음과 깊은 사랑을 깨닫지 못했었다.

필자에겐 특목고를 나온 아들이 있다. 치열한 경쟁보다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전공과는 다른 진로를 모색하며 비생산적인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나는 그에게 내가 정한 기준과 원하는 것들을 강요하지 않는다. 조용히 지켜보며 필요한 일이 있을 때 조언을 할 뿐이다. 아이 엄마는 여전히 세상의 기준에 뒤처질까 고민하는 눈치지만 나와 크게 다르진 않다. 그의 인생은 스스로 건강하게 서는 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의 아버지처럼 다만 그의 결정을 믿고 조용히 기다려 줄 뿐이다.

무한경쟁의 세태를 보며 많은 부모는 조급하게 아이들의 미래를 자신이 기획하려 든다. 피상적으로는 좋은 아빠, 능력 있는 아빠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긴 시간이 흐르고 나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행한 일들이 나쁜 아빠, 이상한 아빠의 역할을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소유가 아니다. 우린 지금 아이들에게 어떤 아빠일까?

김찬동 수원시립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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