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균의 사할린견문록] 6. 사할린동포의 비극을 회억하며
[이해균의 사할린견문록] 6. 사할린동포의 비극을 회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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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들 恨맺힌 공간에 불편하게 자리한 日 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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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할린 향토박물관은 일본 성을 닮은 건축양식부터 일본풍 그대로다. 약 19만 점의 소장품은 야생 동물, 원주민의 역사와 민속품, 소련시절의 역사 등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무엇보다 지하 1층의 박제된 야생동물들의 날카로운 눈동자들은 살아있는 듯 선명했다. 전혀 지루하지 않는 현장감이 여느 박물관보다 흥미를 끌었다. 2층 한쪽에 전시된 한국인의 근대적 결혼식 사진은 진한 향수를 느끼게 했다. ‘축 결혼식’, 이라는 글씨와 ‘복 복자’와 ‘목숨 수자’에 날짜까지 적혀 있어 누구일까 궁금하기까지 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결혼식의 수복(壽福)이라는 글씨는 늙어 파뿌리가 될 때까지 복되게 살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싶다. 다음 행선지는 시립미술관이다. 이곳 광장 앞에도 안톤 체홉의 동상이 있었다.

빠삐용의 악마의 섬처럼 죄수들과 정치범수용소로 악명을 떨치던 제정러시아 시절의 사할린, 그는 모스크바에서 3개월에 걸쳐 이곳에 왔다고 한다. 건강도 좋지 않았던 30세, 시베리아 횡단열차도 없던 시절이었다. 오직 배와 마차로 힘든 노정 끝에 사할린에 도착한 그는 이곳을 <슬픔의 틈새>라고 했다. 그리고 모스크바로 돌아간 3년 후, 3개월간의 기록 <사할린 섬> 중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교도소에 방치했고, 기준도 없이 야만적으로 그들을 헛되이 죽어가게 했다. -술을 먹지 않고 미치지 않는 이상 이곳에 살기란 무척 힘든 곳이다.

안톤 체홉은 44세의 젊은 날 세상을 떠났다. 아내가 건네 준 포도주 한 모금 머금고 미소 지으며. -시립미술관입구에는 때마침 사할린 한인들의 기록사진이 전시되고 있었다. 1949년~2019년 고려신문 70년 사의 스크랩과 <조선로동자> 라는 신문, <레닌의길로> 라는 소련공산당 싸할린주 위원회 기관지라는 한글판 신문도 눈에 띄었는데 1989년 전대협 대표로 베를린을 경유 평양까지 갔다가 판문점으로 돌아온 통일의 꽃, 민주열사라는 수식어를 가진 임수경 씨의 인터뷰사진도 있었다. 이곳 사할린이 오히려 남북한 통합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음을 알 수 있어 좋았다.

1990년 소련과 수교가 되고 국적기가 처음 사할린 땅에 내린 날 눈물을 훔치는 스튜어디스의 사진은 환영인지 환송인지, 뒤의 한인 인파들도 감격과 감회에 젖어있는 모습이 사할린의 아픔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렇게 트인 길로 한국의 연예인들이 대규모 공연을 하는 장면, 특히 수많은 관중 속에서 노래하는 젊은 가수 최진희씨의 공연 장면은 사할린 동포들의 가슴을 얼마나 적셨을까. 1990년 소련과 수교하기까지 무려 45년간 4만 명의 동포들은 고국으로부터 버려져 있었던 것이다. 흑백사진 속의 과거들이 아프고, 기쁘고, 감격스러워보였다. 그들에게 고국이 있다는 것은 어머니가 곁에 있는 것처럼 행복했을 것이다.

야생동물
야생동물

시립미술관에는 어제 만난 조성용 한인작가의 그림과 그의 러시아친구 작품이 전시 중이었다. 2층에는 한국작가와 북한작가의 작품이 동시에 전시되고 있었고 러시아 유명작가들의 소장 작품들이 신고전주의 풍으로 전시되고 있었다. 한쪽 방에 러시아의 고 미술품들이 전시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전혀 낯설지 않은 아담한 미술관이었다. 이덕규 시인은 이곳에 전시된 작품을 보더니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구멍 난 발을 설명하는데, 구멍이라는 공간적 개념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며 입 안 가득 거품을 물고 있었다. 그가 갑자기 도슨트가 되어 이유 없이 미술관투어 참여자가 된 불특정 몇 명을 대상으로 해설에 열중하는 순간, 조용히 밖을 나온다.

얼마를 걷지 않아 시청이 나오고 건너편에 레닌광장이보였다. 러시아의 어느 도시를 가도 레닌 광장이 있고 그의 동상을 볼 수 있는데 이곳에도 육중하게 레닌의 동상이 서 있었다. 마르크스 엥겔스를 잇는 러시아 공산당 및 소비에트연방공화국의 창설자이자 혁명가인 그는 러시아의 시대적 국가관에서 조금씩 퇴출당하는 형세다. 과거 소비에트 연방공화국에서 독립된 국가에서는 레닌의 동상이 대부분 파괴되는 반달리즘이 만연해 있는데 이곳 광장에는 천안문의 모택동처럼 굳건히 중앙 광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어제 만나기로 한 러시아 작가 주화백이 나와 있었다. 하늘은 오랜만에 푸른빛과 하얀 구름을 평범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한 소녀가 까만 당나귀 등에 올라 토닥토닥 발굽소리를 내며 지나갔다. 시장 구경을 가기 전 화가들만 따로 갈라져 작가 레지던시로 보이는 창작 공간을 찾아 나섰다. 꼬불꼬불 미로를 따라 들어가니 조성용 작가의 작업실이 나왔다.

그는 몹시 분주해 보였으나 우리를 위해 본인의 그림을 이것저것 들춰내며 간단한 설명까지 해주었다. 리얼리즘 작가이지만 나름 독특한 화풍을 견지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만나 알게 된 일행 중 한 사람에게 생선 몇 토막을 건네주었는데 저수지 지킴이 가물치보다 커보였다. 이걸 한국까지 가져가려면 아이스박스가 필요하리라. 우리는 모두 각자 쇼핑을 했다. 재래시장과 슈퍼마켓이 있는 상가 건물이 혼재하고 있었다. 갖가지 과일을 즐비하게 쌓아놓은 곳, 알록달록한 옷들을 매달아 놓은 곳, 우리나라의 시장 풍경과 다를 바 없는데 너무나 한가했다. 함께 한 마켓으로 가서 생선을 포장할 아이스박스를 찾는데 이 집 아가씨가 무척 친절하게 도와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로 보이는 가게 아저씨가 보통형의 자기 딸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하였다. 주화백의 통역은 놀랍게도 이랬다. “누가 말 한필 값만 주고 우리 딸 좀 데려가라고 하시요!”

모두들 입가에 그윽한 미소를 흘리며 갑작스런 물건에 원인모를 입맛을 다시는 분위기였다. (가성비 좋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처럼, 그러나 당혹한 뭐 그런…) 마지막 투어를 공고하게 마치고 버스에 올랐다. 오늘 석식은 한국문화원의 한국관에서 대게 정식을 함께 했다. 만족할만한 식사였다. 천천히 가가린 공원을 가로질러 돌아온다. 잠시 공원벤치에서 휴식할 때 이덕규 시인이 또다시 일장 연설을 내놓았다. 황순원형(形), 김동인형, 서정주형 등의 연애관을 부처가 중생에게 전하 듯 설파했다. 나는 아무래도 황순원 형 같다고 생각했으나 다수가 이오연 민예총 수원지회장을 쳐다보고 있었다.

하룻밤을 더 보내고 여장을 꾸린다. 간단히 조찬을 마치고 가가린 공원을 산책했다. 그런데 공원을 걷다말고 이오연 작가가 귀중한 발견을 한 듯 멈춰서 있었다. 호숫가에 한국 소나무 같은 노송이 한그루 서 있고 그 옆에 일본 신사처럼 생긴 비석의 기단이 보였다. 비는 잘려나간 듯 사라졌고 부근에 또 다른 비가 하나 서 있는데 王子池라고 새겨 있었다. 그는 이 한문을 “왕 자지”라고 천천히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해독하고 있었다. 일본 왕자가 다녀간 기념으로 이 호수를 왕자의 못이라고 했을까. 비의 뒷면엔 무어라 일본 글씨가 빼곡히 새겨져있었다.

일본의 잔재는 이 북방 사할린의 곳곳에도 마치 우리나라의 주요산맥 정상에 말뚝을 박아 정기를 끊으려 했던 것처럼 불편하게 남아있었다. 비행기에 오르며 생각한다. 사할린 인구 75만 중 아직 소수민족 중 가장 많은 2만 5천명의 한인이 산다고 한다. 한인1세는 1천여 명뿐이고 대부분이 2세, 3세다. 또한 2000년 이후 영구 귀국하여 정착한 700여 명의 동포들은 현재 경기도 안산시 고향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고 계신다.

이번 경기민예총 해외문화예술탐방은 3ㆍ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100주년이라는 의미 있는 해여서 더욱 가치 있는 여행이었으며 개인적으로도 사할린이라는 우리 동포들의 한 서린 흔적들을 꼭 한번 찾아보고 싶었다. 더구나 필자가 기획한 수원민족미술협회의 3ㆍ1운동 100주년 기념전을 돌아가면 바로 진행해야하며, 위원회별로 연말에 있을 사할린 탐방 결과물 전시를 준비해야한다. 배웅 나온 주명수 한인 작가의 잡은 손을 놓았다. 이 순간이 마지막일수도 있는 것은 강제징용을 갔던 수많은 한인이 그랬던 것과 같은 기약할 수 없는 일이다. 무언가 아쉬운 사할린이 상공에서 아스라이 사라진다. 죽고 사는 게 진정 물소리 같은 것일까. 운명이라기엔 너무나도 애잔한.
 

사할린 시립미술관
사할린 시립미술관

이해균 수원민족미술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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