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베토벤의 웃음
[문화카페] 베토벤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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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은 평생 병원 문턱을 드나들며 질병들을 치료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청각장애는 물론 소화기능 부실, 장기간의 상습적인 음주로 인한 간 기능저하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유사 이래 신이 저지른(?) 가장 큰 실수는 베토벤의 청각을 빼앗아 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많다. 존재하는 베토벤의 초상화에서 그가 웃는 모습은 고사하고 옅은 미소라도 짓는 것을 발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오히려 고뇌와 사색하는 그림을 통해 그를 직접 경험하지 못한 후세들은 그가 행복하지 않았으며 유별난 음악가로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이런 정의는 올바르지 않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베토벤의 음악 속에 노출된 유머와 위트는 셀 수 없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도 들린다. 베토벤이 “하하하” 소리 내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장면은 그의 교향곡 8번 2악장에 잔뜩 깔렸다.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교향곡’의 4개의 악장 중 인류의 우애와 신에 대한 무한한 존경이 가득한 피날레만 기억하고 있다면 베토벤의 다양성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같은 교향곡의 2악장은 하늘을 나는 듯한 경쾌함이 유머와 함께 그윽하고 3악장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포근하게 바치는 사랑의 고백으로 들리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이제라도 베토벤의 데드 마스크(dead mask)보다는 그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담긴 초상화를 지혜로운 화가들이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베토벤이 인생을 즐기며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고 자연 속에서 행복한 미소를 띤 그런 모습으로….

지난 15년간 중국 대도시의 여러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며 다양한 중국의 음악인들과 청중들을 콘서트홀 안과 밖에서 대면하였다. 중국인들에 대한 필자의 좁은 견해는 그들의 감정표현은 무디고 때로는 지나치게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이들과 교감이 있는 연주를 할 수 있을지 늘 의심하며 연습에 임한다. 묵고 있는 호텔의 프런트 직원, 식당 종업원들은 정감 어린 최소한의 친절이 금기되어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런 연유로 그들에게 미소 띤 얼굴로 아침인사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는 나름대로 자신만만한 정의를 내린다.

그러나 이 또한 그들의 내면적 표현을 파악하지 못하는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지난주 상하이에서 연주를 마친 후 ‘예원’이라는 오래된 공원을 찾았다. 그동안 경험한 연주자, 호텔 직원, 식당 종업원들의 사무적인 무표정은 부정적인 표시가 아님을 인지하게 되었다. ‘예원’에서 가족, 친구와 함께 나들이 온 중국인들은 모두가 엄청나게 밝고 환한 표정이었다. 그들이 직장에서의 감정적인 표현이 우리가 기대하는 바와 다르다고 그들의 내면을 섣불리 판단한 것은 심각한 오판이었다.

한국의 오케스트라로 화제를 바꿔본다. 숙련된 기술과 반복적인 훈련으로 다져진 연주자들의 퍼포먼스는 과연 청중들에게 어떻게 전달되고 있는지 매 연주 지휘자로서 호기심을 갖는다. 그간의 경험을 통해 얻은 교훈은 연주자들이 내면으로 자신이 연주하는 곡을 진정으로 즐기며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청중들의 판단은 예민하고 정확하다는 것이다. 21세기는 오디오 시대를 넘어 디지털비디오의 최첨단 영역이다. 콘서트홀에 오지 않아도 유튜브 등으로 연주를 선택하여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다. 청중들은 이미 많은 것을 경험한 상태에서 연주를 접한다. 2020년 시즌은 베토벤의 탄신 250주년이 된다. 1770년에 태어난 베토벤의 귀중한 악보를 판권 없이도 연주하는 엄청난 행운을 우리는 누리고 있다. 반면, 이제는 많이 듣고, 자세히 보고, 다양하게 느낄 수 있다. 연주자들은 청중에게 본인들의 감정을 풍성하게 표현하고 스스로 음악에 푹 빠져 있는 행복한 표정을 전달하는 것이 섣부른 오해를 방지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임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전 예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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