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통령의 착각
[기고] 대통령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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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런 말이지만, 대통령이 퇴임하면 불편한 것이 3가지 있다 한다.

그중 첫 번째는 교통체증이다. 대통령의 동선은 경호상의 이유로 극비사항이다. 차량 이동의 경우 경찰의 교통통제를 받으며 최단 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한다. 도로 위의 지체와 정체는 경호의 이유만으로도 있어서는 안 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퇴임 후 시민으로 돌아오면 경호실의 경호를 받긴 하지만 교통통제의 혜택(?)을 받을 수 없어 새삼 교통체증을 실감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는 먹거리다. 대통령의 구미가 작동하면 언제든 상시 대기하는 최고의 요리사에 의해 웬만하면 청와대 내에서 맛난 음식을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퇴임 후에 눈치 없이 별미나 간식, 혹은 밤참을 요구한다면 불평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세 번째는 낮은 천장이다. 청와대 집무실 및 관저 등 근무와 생활 공간은 일반인들의 주거·생활 공간에 비해 큼직하고 널찍하며 층고가 높아 쾌적하다. 그러나 퇴임 후 생활하게 되는 사저는 청와대에 비해 공간은 협소하고 답답하다. 넓은 집에서 작은 집으로 이사한 경험이 있다면 쉽게 느껴질 것이다.

비록 농(弄)이 섞인 말이지만, 사소한 환경 변화도 익숙하기까진 시간이 필요할 진데, 하물며 최고의 권력과 권위를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복귀하였을 때 그 허탈감과 덧없음은 얼마나 클 것인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렇지만 제일 격세지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사람 때문이다. 사또는 바뀌어도 이방은 안 바뀐다는 세속의 처세를 비로소 실감하게 된다. 그리 머리 조아리고 눈앞에서 어른거리던 사람들이 뜸하게 줄어 서운한 마음과 함께 염량세태(炎世態)를 절감하게 된다.

그러나 한 치 앞을 헤아리는 예지(叡智)란 인간의 능력 밖이듯, 재임 시에는 너무 바빠, 아주 이른 시기인 5년 만에 이러한 시간과 상황을 마주할 것이란 생각을 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시간은 오지 않을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러한 착각은 특정 대통령에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역대 대통령들에서 볼 수 있는 일반적 경우다.

그런데 더욱 심각한 착각은 ‘역사에 기리 남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과업을 ‘내가’ 이루어야 한다는 사명감에 사로잡혀, 오늘의 비판과 시련이 있을지라도 미래를 위해, 우리나라를 위해 견뎌내고 돌파해야 한다는 역사적 소명을 더욱 굳건히 하게 된다.

‘다시는 선거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기에 표를 의식할 필요가 없다.’ ‘소신껏 하면 된다.’ ‘언젠가 나의 진심을 알아줄 것이다.’ ‘지금 욕을 먹더라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한다.’ ‘5년 단임, 단 한번의 대통령 자리에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은 너무 많다’는 조급증에 사로잡히게 된다.

사실 ‘국민이 원하는 것’과 ‘국민에게 필요한 것’은 늘 같지 않다.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가 더 많다. 무엇을 선택하느냐는 지도자에게 딜레마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국민이 원하는 것’에만 치중하면 대중영합주의(포퓰리즘)가 될 수 있고, ‘국민에게 필요한 것’에 치중하면 독재 혹은 파쇼가 될 수 있다.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을 적절히 조화하는 것이 정치고 지도력이다. 그래서 정치가 어렵고, 지도자가 고독하다.

정상환 국제대 교수·前 청와대 행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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