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화령전과 고유별다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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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열병과 제18호 태풍 미탁의 영향에도 제56회 수원화성문화제가 개막됐다. 수원화성문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주요행사 중 하나가 ‘화령전(華寧殿) 고유별다례(告由別茶禮)’이다. 수원화성행궁은 정조가 세웠지만 ‘화령전’은 순조가 세운 정조의 영전이다. 화령전은 1800년 6월28일 정조 서거 이후, 순조 원년 4월29일 완공해 정조 어진을 봉안하고 화령전에 응당 행해야 할 절목인 ‘화령전응행절목’을 개정해 수원 유수로 하여금 사맹삭과 탄신제, 납향제를 올리도록 한 곳이다.

순조는 화성에 묻힌 선왕 정조를 10여 차례 찾았는데 화령전에 예(禮)를 행함은 물론 순조 12년 9월22일에는 정조대왕의 주갑(회갑)이어서 화령전에서 친히 작헌례를 행했다고 한다. 순조 26년과 28년에는 왕세자가 따라와 아헌례를 행했으며 이후 헌종 2회, 철종 3회, 고종이 2회로 왕의 친제가 17회 이뤄진 조선시대 유일한 외방지전이다.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 서유구가 수원 유수로 재임(헌종2년)하면서 쓴 행정일기 ‘화영일록’에는 “현륭원에는 속절제(설, 한식, 단오, 추석, 동지)를 지냈고 화령전에는 사맹삭, 탄신제, 납향제에 헌관으로 참여했다”고 기록돼 있다.

이렇듯 화령전에서 모시는 제는 지역 유수가 초헌관을 맡지만 이번 고유별다례에서는 명예수원시민으로 위촉된 이금로 전 수원고검장이 초헌관으로 고유별다례를 진행했다. 특히 이번 고유별다례는 화령전의 ‘운한각·복도각·이안청’이 지난 8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2035호로 지정돼 그 의미를 더했다. 운한각과 복도각, 이안청은 수원 화령전 안에 ㄷ자형으로 배치돼 있다. 운한각은 화령전의 중심인 정전, 이안청은 운한각 옆면을 바라보고 서 있는 건물, 복도각은 두 건물을 잇는 통로이다. 화령전은 전주의 경기전과 함께 궁궐 밖에 영전을 모신 드문 사례로 평가되며, 정조 이후 모든 왕이 직접 방문해 제향했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곳에서 열리는 고유별다례의 출발을 살펴보자. 다례는 사람이나 신에게 차와 음식을 대접하는 예 또는 그러한 법식을 말한다. 다례라는 말이 처음 나타난 것은 조선왕조실록의 태종 즉위년(1401년)에 중국 명의 사신에게 차를 접대한 기록이 있다. 다례는 목적에 따라 생활다례와 제전다례로 진행된다. 별다례가 처음 등장한 때는 명종 즉위년(1546년)으로 제사 의무가 없는 특정한 날에 영혼에 대한 공경과 추모의 뜻과 함께 올리는데 특별히 행해지는 명분이 있어야 한다. 고유별다례는 정조때인 18세기 후반부터 성해지기 시작했는데 정조의 화성행차 넷째 날에 “이번 별다례를 행궁에서 하였고”라는 대목이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는 순조 22년 2월2일에 정조대왕이 혼인한지 61년인 날 회혼을 축하하는 주량회갑 별다례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번 고유별다례는 ‘진설도’에 나와 있는 제품을 빠짐없이 재연했으며 정조대왕이 즐겨 드시던 차와 술을 전문가 고증을 통해 마련했다. 특히 별다례를 올린 후 제 참례자와 관람객들에게 음복할 기회도 주어졌다.

돼지열병 확산으로 수원화성문화제의 능행차가 크게 축소되고 일부 행사가 없어지기도 했지만 고유별다례만큼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이날 새벽까지 태풍 미탁의 영향으로 거센 비바람이 몰아쳤으나 정조대왕의 영향인지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게 개었다. 고유별다례는 조상을 모시고 한국 다도의 덕을 실천하는 우리고유의 전통문화이며 정조의 효(孝) 사상을 고착시키는 의례이다. 수원화성문화제의 성공과 안녕을 기원하는 ‘화령전 고유별다례’가 가장 한국적인 효문화를 알리는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성장하길 기대해 본다.

최원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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