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처음부터 두 가지 점을 강조해왔다. 화성 연쇄 살인 사건에 대한 분별 있는 접근이다. 하나는 30년 전 사건의 단서를 찾아낸 범인 특정이다. 경찰의 집념과 지혜가 아니면 묻혀 버릴 일이었다. 다른 하나는 당시 수사에서 드러난 문제점 인식이다. 허술한 수사 공조, 강압 수사 등의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금의 성과가 과거의 잘못을 덮고 가서는 안 된다. 반대로, 과거의 잘못이 지금의 성과를 반감시켜도 안 된다.
이런 가운데 8차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1988년 9월16일 화성군 태안읍 진안1리에서 발생했다. 자신의 집에서 잠을 자던 박모양(당시 13세)이 성폭행당한 뒤 목 졸려 숨졌다. 이듬해 7월 윤모씨(당시 22세)가 범인으로 검거됐다. 윤씨는 대법원에서 무기 징역이 확정돼 2010년까지 복역했다. 그런데 이춘재가 이 사건도 본인이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윤씨가 ‘나는 죽이지 않았다’고 억울해했었다는 주장이 재조명되고 있다.
한 가지 주목할 건 이 8차 사건을 연쇄살인에서 배제했던 논리다. 당시 경찰은 ‘범행 수법이 앞서의 것과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피해자 옷가지를 이용한 결박, 가학행위 등이 박양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박양 살해범은 다른 연쇄살인범과 다르다’며 윤씨를 별개 사건 범인으로 특정하는 정황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 논리는 모순을 갖고 있다. 8차 사건은 살해 장소가 피해자의 집이다. 살해 후 급하게 현장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다. 다양한 가학행위를 여유롭게 한 야산 등지에서의 다른 범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중요한 정황 차이를 묵과하고 ‘가학행위가 없었으니 별개의 범죄다’라고 결론 낸 오류가 엿보인다.
윤씨는 소아마비로 한쪽 다리를 거의 쓰지 못한다고 한다. 시사저널과의 과거 인터뷰에서는 ‘나처럼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놈이 어디다 하소연하겠냐’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적지 않은 여론이 이런 윤씨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반면 이춘재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는 여론도 있다. 이춘재가 이른바 ‘범죄 영웅 심리’로 허위 진술을 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고, 윤씨의 옥중 진술이 감형을 위한 계산된 부인이었다는 분석도 있다.
결국, 경찰의 몫이다. 곤혹스럽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 실체적 진실을 찾아내고 그 결과를 밝히면 된다. 30년 전 경찰의 행위다. 잘못이 확인되더라도 지금 경찰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왜곡된 과거사를 바로잡는 일이고, 그릇된 수사 관행을 개혁하는 일이다. 혹여 이춘재 주장이 거짓이라면 이는 당시 수사팀이 평생 안고 가야 할지도 모를 부담을 덜어주는 일이다. 어느 쪽을 위하든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다행히 이춘재도 살아있고, 윤씨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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