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강화군에는 돼지가 단 한 마리도 없다. 지난달 24일 송해면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이후 5농가에서 확진 판정이 나자 강화군내 39곳 농장의 4만 3천602마리 돼지를 3일까지 모두 살처분했다. 마지막으로 삼산면의 한 가정집에 애완용 돼지 1마리가 있었다. 주인은 애정을 갖고 길러온 돼지를 살처분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강화군은 삼산면에서 돼지열병이 발생해 위험하다며 주인을 설득했으나 끝까지 거부하자 4일 행정대집행을 통해 이 돼지를 안락사 시켰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국내 첫 발생 지역인 경기북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농축산식품부는 파주ㆍ김포시 관내 돼지도 모두 없애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 돼지를 전량 수매후 정밀검사를 거쳐 도축 혹은 예방적 살처분을 한다는 것이다.
지난 2일 연천군의 비무장지대에서 발견된 야생멧돼지 폐사체에서 ASF 바이러스가 검출됐다. 발생 2주가 넘도록 찾지 못했던 감염경로를 밝힐 중요한 단서를 찾은 셈이다. 휴전선을 넘어온 멧돼지는 ASF 발병 초기부터 유력한 감염경로로 여겨졌으나, 국방부가 “DMZ내 철책은 멧돼지가 넘어올 수 없는 구조물로 설치돼 있다”며 이동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2018년 이후 지난달까지 GOP 철책 중 13곳이 파손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대규모 살처분이 이뤄진 강화군 접경 해안가에서 북에서 넘어온 것으로 보이는 멧돼지 3마리가 발견됐다.
ASF 바이러스는 감염 멧돼지뿐 아니라 새·쥐·파리 등 야생동물들이 감염된 멧돼지 사체나 배설물에 접촉했을 때도 바이러스를 옮길 수 있다. 살아있는 멧돼지가 철책에 막혀 DMZ를 넘나들기 쉽지 않다고 해도, DMZ내 방치된 멧돼지 사체가 돼지열병 확산의 원흉이 될 가능성이 있다.
멧돼지를 통한 바이러스 전파 우려에 정부가 ‘멧돼지 대응책’에 부심하고 있다. 국방부는 DMZ 철책을 통과하려는 야생멧돼지를 발견하면 즉시 사살하라는 지침을 내린 상태다. 총성으로 인한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해 이런 내용을 북측에 군 핫라인으로 통보했다. 군은 또 연천 중부일대 DMZ내에 헬기를 투입해 방역을 시작했다.
DMZ 멧돼지는 겨울철에 GOP부대에서 음식물 찌꺼기를 먹이로 주는 등 한때 장병들의 보호까지 받았다. 그러나 GOP지역에 첨단 경계·감시 장비가 설치되면서 툭하면 경계음이 울려 5분 대기조가 출동하는 등 군인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젠 돼지열병 바이러스 전파 우려까지, 그야말로 골칫거리다. 농가에서 사육하는 ‘집돼지 잡기’에만 집중했던 방역당국이 DMZ 멧돼지까지 차단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다. 일이 훨씬 커지고 복잡해졌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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