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부톤섬의 소수민족 찌아찌아족은 ‘한글’을 부족어 표기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1만7천여 개의 섬으로 이뤄진 인도네시아는 본래 사용 언어가 700여 개나 됐는데, 로마자로 표기하는 인도네시아어를 공용어로 지정한 뒤 소수민족 언어가 급감했다. 찌아찌아족도 독자적 언어는 있지만, 표기법(문자)이 없어 고유어를 잃을 처지였다. 부톤섬의 바우바우시는 2009년 훈민정음학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찌아찌아어를 한글로 표기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한글 수출’ 1호 사례다.
한글 도입 첫해에는 교재 집필에 참여한 현지인 아비딘씨가 학생들을 가르쳤고, 2010년 부터 정덕영씨가 유일한 한국인 교사로서 10년째 현장을 지키고 있다. 찌아찌아족이 한글을 부족어 표기법으로 채택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초기에는 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알린 사례로 화제를 모았다. 중앙정부·지자체 등에서 부톤섬에 문화원을 설립하고 도시개발을 해주겠다는 등 온갖 지원을 약속했다. 그러나 제대로 지켜진 게 하나도 없다.
정씨는 2014년 지인과 동창이 주축을 이뤄 출범한 ‘한국찌아찌아문화교류협회’를 통해 소액기부금을 후원받아 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1천여 명이 한글을, 또 다른 1천여 명이 한국어를 정씨로부터 배웠다.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교사가 모자라는 상황이다. 정씨는 부톤섬을 떠나게 될 때, 한글·한국어 교육의 맥이 끊길까 걱정이다. 현지인이 한글·한국어 교수법을 제대로 배워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인데 이를 정씨 개인이 하기엔 어려운 일이다.
찌아찌아족이 알파벳 대신 한글을 표기 언어로 선택한 이유는, 한글이 어떤 글자보다도 소리를 명확하게 표기할 수 있어서다. 한류문화가 확산되면서 해외 대학에 한국어과, 한국어센터 등이 개설되고 있다.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상하원에서는 10월9일 한글날을 ‘한글 데이(Hangul Day)’로 제정하는 결의안이 통과됐다. 우리말과 글이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를 타고 전 세계로 퍼지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은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세계적인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는 1994년 6월호에서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합리적인 문자라고 극찬했고,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 로버트 램지 교수는 2013년 “한글보다 뛰어난 문자는 없다.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알파벳”이라고 말했다. 유네스코에서는 문맹 퇴치에 공이 큰 사람이나 단체에 ‘세종대왕상’이라는 이름으로 시상을 하고 있다. 정부는 ‘한글의 세계화’라는 구호만 외칠게 아니라 실효성 있는 정책과 함께 적극 지원을 해야 한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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