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범 이춘재가 교도소에 복역 당시 봉준호 감독의 ‘살인의 추억’을 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에 개봉해 51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다. 영화 관람 당시 재소자들 사이에서도 영화 속 용의자로 알려진 박현규(박해일 분)에 대한 비난과 야유가 쏟아졌다고 한다. 이춘재는 자신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면서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영화 속 박현규와 이춘재는 모두 진안1리 출생으로, 군대를 막 제대한 20대 초반 청년이었다는 설정이 일치한다. 영화 속 서태윤 형사(김상경 분)가 박현규에게 “네가 군 제대하고 이 동네 공장으로 온 뒤부터 여기서 사건들이 줄줄이 일어난 셈이란 말이야”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이춘재는 군을 제대해 귀향한 직후에 연쇄살인사건을 저질렀다.
이춘재는 전기부품제조회사에 다녔고 영화 속 박현규는 레미콘 공장에 근무하는 걸로 보이는데, 이춘재가 다녔던 회사 옆에 레미콘 공장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춘재는 6차 사건이 벌어진 1987년 5월 이후 탐문과 행적조사 등을 통해 용의자로 지목돼 수사지휘부에 불려갔으나 혈액형과 족적이 달라 수사 선상에서 제외되는데, 이는 영화 속 박현규가 수사대상에 올랐다가 제외되는 과정과도 유사했다.
갖은 노력에도 사건의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당시 형사들이 나름 용하다고 하는 무당을 찾아가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부탁하고, 심령술사의 제보 한마디도 수사에 반영했다는 사실 역시 영화 속에서 그대로 재연됐다.
‘향숙이, 향숙이 이뻤다’는 짧지만 인상적인 대사를 남긴 영화 속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 중 하나인 백광호(박노식 분)는 지하실에서 고문을 당하고 범인으로 내몰린다. 8차 사건의 진범으로 잡혀 20년 가까이 복역한 윤모씨가 연상된다. 이춘재가 이 사건도 자신이 했다고 진술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이에 대한 진실 또한 밝혀지리라 믿는다.
이춘재는 자신의 행적을 그대로 옮겨 놓은 영화 속 리얼리티에 감탄을 하며 카타르시스를 느꼈을지,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이명관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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