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참여정부의 데칼코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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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덮인 들을 걸을 때(踏雪野中去ㆍ답설야중거), 마음대로 함부로 가지 마라(不須胡亂行ㆍ불수호란행), 오늘 내가 걸어간 발자국이(今日我行跡ㆍ금일아행적), 뒤에 오는 이는 이정표가 되리니(遂作後人程ㆍ수작후인정)’.

서산대사의 답설(踏雪)이라는 시다. 눈길을 걸을 때 발걸음을 조심하라는 이유는 뒤에 올 사람의 이정표가 되기 때문이다. 이 유명한 시는 전직 대통령의 좌우명이기도 했고 김구 선생이 즐겨 쓰던 시구였다. 한글날에도 나라는 조국 장관으로 시끄럽다. 소셜네트워크(SNS)로 젊은이들의 공감과 지지, 사랑을 한몸에 받던 조 장관을 보니 새삼 답설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는 과거 SNS에 많은 명언을 남겼다. 정권과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일침을 가했고 부도덕한 사회 지도자에게 쓴소리를 하며 이 시대의 공정하고 도덕적인 리더로서 표상이 됐다. 하지만, 현재 그는 보수ㆍ진보의 진영 싸움으로 분열되는 나라 한가운데 서 있다. 조 장관을 지지하지 않은 다수 국민은 그를 둘러싼 가족, 친지의 수많은 의혹에 분노하고 있다. 특히 대학생들은 지성의 지표였던 조 장관에 대한 배신감으로 촛불을 들었다.

한 나라의 정권을 결정하는 세력은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 국가의 안정을 바라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중도성향의 국민이다. 진영에 대한 절대적 지지세력은 어떠한 상황에도 변함이 없다. 16, 17대 대선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16대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데는 대한민국의 경제 주체인 40~50대의 지지가 있기에 가능했다. 기존세력에 대한 거부감에 따른 변화의 열망 결과였다. 하지만, 참여정부는 기대와는 달리 세대 간, 계층 간의 갈등으로 대한민국을 혼란에 빠트렸고 결국, 17대 대선에서 보수 정당의 후보자가 승리했다. 이분법적 대립에 지친 민심이 돌아선 탓이다. 작금의 사태가 참여정부의 데칼코마니 같다.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촛불집회의 성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를 친노 정치의 부활로 보기 때문이다.

집권 3년차 문재인 정부는 검찰 개혁에 총력을 쏟고 있다. 여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검찰의 악연을 꼽는 이들도 있다. 이 고리를 끊는 중심에 조국 장관이 있고 조국 장관만이 검찰을 개혁할 수 있다며 밀어붙이고 있다. 검찰 개혁은 여야, 진보ㆍ보수만의 바람이 아니다. 검찰 본연의 목적인 국가 최고의 법 집행기관으로써 공명정대하게 범죄를 수사하고 법을 집행하길 바라는 국민의 뜻이다. 그렇다면, 조국 장관만이 검찰을 개혁할 수 있는 적임자일까. 조국수호에 나선 그들은 연이어 불거지는 여러 의혹과 행동에 수긍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 지금 야당의 한 인사가 조국 장관과 같은 사안이라면 조국 장관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아마도 그의 SNS에는 온갖 비난의 글로 가득하고 ‘조속히 내려오라’는 의미를 담은 비수 같은 말을 쏟아냈으리라. 그럼에도, 조국수호를 외치는 이유는 ‘여기서 밀리면 대통령까지 밀린다. 정권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이 깔린 것은 아닐지. 그렇다면, 차라리 ‘대통령 수호’라는 손팻말에 구호를 외치는 것이 낫다. ‘조국수호=검찰개혁’이 아닌 ‘검찰개혁=대통령 수호’의 프레임은 그나마 중도성향의 국민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늦지 않았다. 조국 법무장관은 지금이라도 물러나야 한다. 설사 대통령이 말린다 해도 그리해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은 ‘조국 사퇴’ 집회의 무게를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지지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반대편에서 이야기하는 국민의 작은 소리도 겸허히 들어 보듬어야 한다. 그것이 대의 정치요 포용정치다. 자칫하면 참여정부의 비극이 다시 일어날 수도 있다.

김창학 정치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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