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등잔 밑이 어둡다

심평수
심평수

지난여름 민원현장을 확인하고자 빌라가 많은 오래된 주택가를 둘러보러 나갔다. 건물 주변 빗물받이 등 여기저기에 물이 고여 있는 곳이 많았으나 모기 유충은 발견되지 않았다. 한여름 모기 유충이 서식하기 좋은 물웅덩이에 모기 유충인 장구벌레가 없는 것은 보건소 방역소독반이 열심히 일한 흔적으로 보였다.

우리가 현장을 확인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어디서 나왔는지 묻더니 자기가 민원을 제기한 사람이라며 주변에 모기가 너무 많다고 하소연했다. 그런데 주변의 물웅덩이에서는 모기 유충이 전혀 보이질 않았으므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 뭐가 문제인지 알아보려고 아주머니 댁 대문 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작은 마당에 있는 화분에는 부추와 들깨 등 여러 가지 채소가 심어져 있었는데 들깨 옆에서 모기 한두 마리가 날아다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모기가 있다는 것은 근처에 유충서식지가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바로 옆에 놓여 있는 양동이로 눈이 갔다. 그 안에는 싹을 틔우려고 물에 담가 놓은 고구마가 들어 있었다. 모기는 고여 있는 물에 알을 낳으며 맑은 물보다는 약간 더러운 물을 더 선호한다. 흐르는 물에 알을 낳으면 알이 떠내려가고 너무 맑은 물에는 새끼들이 먹고살 유기물이 없을뿐더러 눈에도 잘 띄기 때문이다. 그런데 양동이에 고여 있는 물은 고구마에서 나온 유기물 먹이도 있고 적당히 더러워서 사람들 눈에도 잘 띄지 않고 그야말로 모기 유충이 서식하기에는 최적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양동이 안에서 뭔가 움직임이 보여 물을 떠서 확인해 보니 적어도 수천 마리는 족히 돼 보이는 장구벌레(모기 유충)들이 우글거리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본 아주머니는 스스로 집안에서 모기를 기르고 있으면서 계속 민원을 넣었다는 사실에 당황해 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모기 유충은 고인 물만 있으면 어디서나 서식할 수 있다. 화분받침이나 쓰레기통 등 크기와 상관없이 2주 이상 고여 있는 물에서는 성충 모기가 되어 날아갈 수 있다. 따라서 보건소에서 아무리 방역 작업을 열심히 해도 각 가정의 울타리 안에서 서식하는 모기를 내버려두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격이 되고 만다.

뎅기열 등 모기로 인한 감염병이 심각한 싱가포르에서는 집안에서 모기가 발견되면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모기로 인한 감염병이 아직은 심각한 수준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기후가 점점 아열대로 변하고 있어서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할 처지가 못 된다. 따라서 내 집 주변을 잘 살펴서 모기 유충의 서식처를 없애는 것이 내가 사는 곳을 모기로부터 안전하고 쾌적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심평수 수원시 영통구보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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