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거져 나오는 가혹강압 수사 피해자들 / 이 역시 청장이 말한 ‘풀어줘야 할 恨’이다

어이없고 충격적인 논란이 새삼 불거지고 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당시 경찰의 가혹ㆍ강압 수사다. 경찰은 1990년 9차 사건의 범인으로 윤모(당시 19세)군을 검거했다. 자백까지 받아낸 경찰이 윤군을 데리고 현장검증을 했다. 검증 현장에서 윤군이 “경찰이 시켜서 자백했다”며 부인했다. 사건과 무관한 알리바이가 밝혀졌고, 뒤늦은 혈흔 발견 등도 논란이 일었다. 30년이 흘렀고 이 사건의 범인이 이춘재로 확인된다.

조사 과정의 충격으로 유명을 달리한 사람들도 여럿이다. 역시 9차 사건의 용의자로 조사받은 차모(당시 38세)씨가 기차에 뛰어들어 자살했다. 20여 일전 경찰의 조사를 받고 풀려 나온 뒤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다. 10차 사건으로 수사받았던 장모씨도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해 숨졌다. 무속인의 ‘계시’로 경찰에 연행돼 고초를 겪었던 김모(당시 45세)씨도 자살 시도, 알콜 중독 등을 겪다가 결국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다.

이들이 하나같이 주장한 것은 가혹ㆍ강압 수사다. 경찰이 설계한 대로의 자백을 강요받았다. 잠 안 재우기, 쪼그려 뛰기 등의 가혹행위도 빠지지 않는다. 노골적인 폭행과 고문의 주장도 여럿 나온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모두 무고한 시민이었다는 점이다. 30년이 지난 뒤 확인됐다. DNA 확인과 본인 자백으로 이춘재가 범인으로 특정됐다. 앞서 언급된 용의자, 수사대상자들은 모두 억울한 시민이었다.

역설적으로 보자. 이춘재가 안 나타났다면 어떻게 됐을까. 화성 연쇄살인 사건은 잊혀 가고 있었다. 그저 영화 소설의 소재로, 노(老) 형사의 회고담으로만 남아 있었다. 여기에 당시 형사 중 일부는 “과거 검거했던 용의자 가운데 범인이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범인은 틀림없는데 고문 논란 때문에 풀어준 것이다”라는 논리였다. 이춘재 아니었다면 이들에 씌워진 ‘용의자’라는 주홍글씨가 계속 새겨졌을 판이었다.

수사 초기,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렇게 강조했다. “억울한 피해자들의 한이 풀릴 때까지 진실을 파악하겠다.” 이때의 ‘억울한 피해자’에 ‘강압수사 피해자나 그 유족’이 당연히 포함될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앞서 조사과정에 ‘권위 있는 외부인 참여’를 제안했던 것도 그런 이유였다. 경찰의 조사 결과를 객관적으로 담보해줄 수 있다고 봐서다. 아직 모든 수사ㆍ조사는 경찰이 단독으로 하고 있다.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수사는 어느덧 전혀 다른 두 방향으로 나뉘어 있다. 하나는 이춘재를 대상으로 한 ‘사건 수사’고, 다른 하나는 당시 경찰을 대상으로 한 ‘가혹 행위 조사’다. 앞의 것은 이춘재가 대상인 ‘수사’고, 뒤의 것은 전직 경찰이 대상인 ‘감찰’이다. 기본 성격에서부터 분명한 차이가 있다. 절차와 방식이 구분되는 게 훨씬 자연스럽지 않을까. 최소한 경찰 내부에서라도 이원화하기를 다시 제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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