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국제고를 일반고로 일괄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2025년 고교학점제의 전면 시행에 맞춰 모든 자사고와 외고를 일반고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이들 학교가 명문대 진학에 유리한 통로로 작용하며 고교 서열화와 공교육 황폐화라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지적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의 입시 의혹이 잇따르자 지난달 9일 문재인 대통령은 “고교 서열화 해소, 대입 공정성 제고 등을 위한 강력한 교육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정·청은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2025년부터 자사고ㆍ외고 등을 일반고를 일괄 전환하는 계획을 논의했다. 현재 초등학교 4학년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5년은 전국에 ‘고교학점제’가 도입된다. 대학처럼 본인의 진로ㆍ희망에 따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듣는 제도로,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 일반고도 ‘수월성 교육’이 가능해져 자사고·외고를 원했던 학생·학부모의 수요를 흡수할 것으로 교육부는 기대하고 있다.
교육부는 지금까지 시·도교육청이 주관하는 5년 단위의 평가를 통해 자사고·외고 등을 일반고로 바꾸는 ‘단계적 전환’을 추진했다. 학교별로 평가해 기준 점수에 못 미친 학교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올해는 전국 42개 자사고 중 24곳이 평가를 받았고, 탈락한 10곳은 지정 취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해당 학교·학부모·지역사회의 반발이 이어졌다. 탈락한 자사고들이 낸 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여 당분간 자사고 지위도 유지하게 됐다.
자사고·외고의 일반고 일괄 전환을 두고 논란이 거세다. 찬성측은 실효성은 떨어지고 혼란만 커지는 단계적 전환 대신 교육부가 시행령을 고쳐 한꺼번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반대측은 수월성과 다양성 교육을 강조하는 글로벌 추세에 맞지 않고 교육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할 우려가 크다고 주장한다. 시대착오적인 ‘고교 평준화’로의 회귀라는 비판이다. 사교육 수요 증가로 학부모 부담이 늘고 예전처럼 강남 8군에 쏠리는 현상이 더 커질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같은 특목고인 과학고ㆍ영재고는 왜 뺐느냐,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목소리도 크다.
교육부는 확정된 것이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교육 현장에선 혼란이 일고 있다. 당장 올해 고교입시부터 영향을 주게 생겼다. 학부모들이 2025년에 없어질 자사고ㆍ외고에 자녀를 보내겠는가. 시행령을 바꿔 자사고·외고를 없애는 식으로 고교 체계를 흔들면 정권과 교육감이 바뀔 때마다 혼란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국민적 공론화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정책은 문제가 있다. 우수 학생들을 위한 수월성 교육은 필요하다. 선진국들은 명문 사립고를 육성하면서, 공립학교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한 교육 개혁을 같이 추진한다. 자사고ㆍ외고를 무조건 없애기 보다 제도ㆍ운영상 문제를 시정하고 보완하는 게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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