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할 때, 멀리서 차가 미리 정지해 건널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어느 부부가 외국여행을 다녀와서 좋았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교통법규를 지키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보행자가 보이면 거리를 두고 미리 정지해 건널 때까지 기다리며, 운전이 미숙한 운전자를 위해 배려해 주는 모습들을 보며 우리와는 다른 교통문화를 경험했다는 것이다.

주요 해외 교통선진국의 보행자 교통문화를 살펴보면, 미국에서는 횡단보도를 횡단하는 보행자가 있으면 모든 차량은 반드시 정지해야 하며, 프랑스ㆍ독일ㆍ호주 등에서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뿐만 아니라 횡단하려는 보행자까지 보호하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우리나라의 최근 5년(2014~2018년) 간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매년 감소 추세이다. 그러나 보행 중 사망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OECD 회원국 평균 19.7%에 비해 약 2배나 높은 39.7%이다. 특히, 지난해엔 2014년에 비해 보행자 사망사고가 22.1% 감소했으나, 횡단보도 통행 중 보행자 사망사고는 11.3% 감소하는 데 그쳤다. 횡단보도 안에서 연 평균 373명의 보행자가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있어 보행자를 배려하고 양보하는 운전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이에 경찰은 관계기관 합동으로 보행자 사고가 증가하는 9월부터 보행자 중심의 교통문화 확산을 위해 ‘사람이 보이면 일단 멈춤’ 교통문화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제27조 제1항에서 ‘모든 차의 운전자(교차로 우회전 차량 포함)는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을 때 일시 정지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를 지키는 운전자는 많지 않다.

운전자는 교차로 우회전이 항상 허용되는 듯 생각할지 모른다. 차량용 신호가 적색이고, 우회전을 하기 전에 보행자용 신호가 녹색일 때는 우회전을 할 수 없다. 만일 우회전을 하다가 보행자와 충돌을 하는 교통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신호위반뿐만 아니라 보행자 보호의무 위반 사고로 중과실 교통사고에 해당하게 된다. 이는 보험에 가입해도 형사처분을 받게 되는 것이다.

또한 보행자가 있을 때 우회전을 무리하게 하게 되면 보행자 통행방해 또는 보호불이행으로 범칙금과 벌점이 부과된다. 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높기 때문에 횡단보도에 진입하기 전에는 우선 정지한 후 보행자를 반드시 확인하여야 한다.

과거 신호와 정지선을 지키는 차량 운전자에게 양심냉장고를 주는 인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처음에는 기본적인 법규를 지키는 운전자를 찾기 위해 몇 시간씩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정지선을 지나 정지하는 차량은 드물다. 강력한 단속 때문일까? 아니면 타인의 시선 때문일까? 아니다.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의 인식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횡단보도가 보이면 멈추자. 보행자가 보이면 멈추는 것이 아니다. 멈춰야만 볼 수 있다. 멈춰야 비로소 한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교통은 ‘문화’라는 표현을 한다. 보행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보행자 중심의 선진교통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정윤희 의정부경찰서 교통과 경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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