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가와 고택을 찾아서] 18. 전남 영광, 연암 김씨 종택
[명가와 고택을 찾아서] 18. 전남 영광, 연암 김씨 종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화락지 명당에 위풍당당 ‘삼효문’… 나라에서 인정한 효자 가문
좌우 곳간채를 거느린 안채 정침의 위용.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4단 장대석을 쌓고 그 위에 주초와 기둥을 놓았다. 다만, 주초와 기둥은 사랑채와 달리 원형이 아니라 4각이다. 안방 툇마루에 앉으면 사진 찍는 사람의 등 뒤에 자리할 아래채 지붕 너머로 너른 들녘이 보인다. 불갑산에서 발원해 부처님의 자비를 가득 머금은 불갑천이 수 백 년 동안 그들의 벼를 흠뻑 적셔 키우고 연안 김씨 일가의 삶을 넉넉히 살찌웠을 것이다.
좌우 곳간채를 거느린 안채 정침의 위용. 사랑채와 마찬가지로 4단 장대석을 쌓고 그 위에 주초와 기둥을 놓았다. 다만, 주초와 기둥은 사랑채와 달리 원형이 아니라 4각이다. 안방 툇마루에 앉으면 사진 찍는 사람의 등 뒤에 자리할 아래채 지붕 너머로 너른 들녘이 보인다. 불갑산에서 발원해 부처님의 자비를 가득 머금은 불갑천이 수 백 년 동안 그들의 벼를 흠뻑 적셔 키우고 연안 김씨 일가의 삶을 넉넉히 살찌웠을 것이다.

연안김씨 직강공파 종택, 영광 매간당 고택으로 드는 마을 어귀, 솔숲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영광은 서해가 10㎞ 상간이니 동고서저(東高西低)가 분명하다. 10㎞ 떨어진 동쪽 태청산(590m)을 제외하면, 100~200m의 나지막한 산들이 동남북으로 에워싼 길지, 먼 북쪽에 불갑천이 동에서 서로들을 휘감아 흐르는 길지, 뒷산의 정기가 모여 약간 부풀어 오른 언덕에 연안김씨 종택이 자리 잡고 있다. 매화꽃이 떨어진 형국(梅花落地)의 길지이며, 학(鶴)의 형상이란다.

김영(金嶸)이 16세기 중엽에 입향하면서 집터를 잡고 고종 초에 집을 세웠다. 일반적 배치와 달리 사랑채, 안채가 북향이다. 배산임수에 좌청룡 우백호를 갖추고, 모든 건물에서 마을 앞 넓은 들을 바라본다. 대문이 큰 자랑이다. 2층 누각의 삼문 형식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중앙에 두 칸 대문, 좌우에 창고 그리고 계단실은 별도다. 공포구조도 관청이나 궁궐의 대문에서 볼 수 있는 외일출목, 내이출목으로 앙서(仰舌)의 살미첨차에 여의주를 문 용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2층 누각 정면에 걸린 삼효문(三孝門) 현판은 고종의 이복형 이재면의 글씨로, 3대에 걸친 지극한 효성을 나라에서 인정해 명정(命旌)을 내렸다. 살짝 가공한 자연석 기단 위에 정방형 주초를 놓고 높은 주좌를 만들어 웅장함을 더하고, 아름드리 소나무 기둥을 그대로 올려 자연미를 뽐냈다. 대문 한쪽은 기둥 간격을 약간 좁혀 평소 출입한다. 다른 쪽은 가마에 앉아 드나들기 편하게 폭을 넓히고 문턱도 낮추고 상부 인방엔 무지개처럼 위로 휜 부재를 사용했다.

매간당 종택 입구 정면. 팔작지붕의 이층 솟을대문으로 건립된 정려문이 위풍당당하다. 유리로 2층 정려각을 사면을 둘러싸 보호했고, 그 위에는 고종의 이복형 이재면의 휘호인 ‘삼효문’ 세로 현판이 걸려 있다.
매간당 종택 입구 정면. 팔작지붕의 이층 솟을대문으로 건립된 정려문이 위풍당당하다. 유리로 2층 정려각을 사면을 둘러싸 보호했고, 그 위에는 고종의 이복형 이재면의 휘호인 ‘삼효문’ 세로 현판이 걸려 있다.

집은 안채와 사랑채를 비롯하여 별당, 사당, 곳간채, 안팎 대문, 마구간, 헛간, 찬광, 정원과 연못까지 갖춘 전형적인 양반집이다. 기거하는 방보다 창고 공간이 훨씬 다양하고 많아, 너른 들과 낮은 산, 바다를 고루 갖춘 대가의 넉넉한 살림을 짐작게 한다. 사랑공간은 북쪽, 안공간은 남쪽으로 분리했다.

사랑공간은 사랑마당을 중심으로 사랑채, 별당과 하인 집, 정원 둘, 연지 등으로 구성된다. 사랑채는 긴 장대석을 3벌대 기단 위에 둥근 주춧돌을 얹고 원기둥을 세웠다. 민간에서는 흔치 않은 기법이다. 중앙에 두 칸 대청, 오른쪽에 한 칸 방과 툇마루, 왼쪽에 방 두 개와 윗방을 두었다. 전면 툇마루 끝에 사랑측간을 두고, 건넌방에 쪽방을 내서 안채로 연결하는 공간으로 사용한다. 빗살문 광창, 방을 연결하는 불발기창 무늬가 모두 예술적이다. 공부방인 별당 툇마루에서 한번 시선으로 연지와 행랑채, 담 너머 산을 볼 수 있다. 향교와 서원처럼 가운데 대청에 좌우 온돌방 구조, 전면퇴가 있어 방에서 오른쪽 끝 툇마루까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사랑채 정원과 중문을 지나면, 마당을 중심으로 ‘ㄷ’자 안채와 ‘一’자 아래채로 구성된 안채 공간이다. 정침은 4벌대 기단 위에 방주를 세우고 툇마루를 전면에 놓았다. 툇마루에 앉으면 아래채 지붕 너머로 들판과 건너편 산이 보인다. 곳간채는 맞배지붕과 우진각 지붕의 좌우 불균형이 흥미롭다. 아래채는 대청마루와 온돌방, 벽 있고 없고, 퉤 붙고 없고 등 용도에 따라 여러 형태와 구조로 아홉 칸을 구성했다. 연속성과 다양성을 동시에 추구한 매력적인 구상이다.

별당 툇마루에서 내려다본 연지. 연지에는 흙탕물에서 고운 꽃을 피우는 연을 기르는 것이 통례였다. 선비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뜻일 것이다.
별당 툇마루에서 내려다본 연지. 연지에는 흙탕물에서 고운 꽃을 피우는 연을 기르는 것이 통례였다. 선비의 삶도 마찬가지라는 뜻일 것이다.

연안 김씨는 조선조 500년 동안 등제자가 문과 171, 무과 174, 사마시 342명에 진충공신(盡忠功臣)이 24명, 1ㆍ2품 대관이 85명이니 국중대성(國中大姓)이라고 불린다. 나라가 잘되려면 자원 특히 인적 자원의 가동률을 높여야 한다. 폭넓게 인재를 발굴하고, 써야 한다. 민주화, 근대화가 별건가? 왕족에서 귀족으로 다시 일반 국민 공채로 인재풀을 넓혀가는 과정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봉건시대에도 공채였고, 현대에도 공채인 세계 유일의 나라다. 공채 덕분에 한국은 다른 제3세계와는 달리 일제의 압제와 6ㆍ25의 폐허 위에서 빠른 속도로 일어설 수 있었다. 최근 조국 수석이 불법적으로 자녀를 명문대 인기학과에 넣은 것은 한국의 최대 강점을 파괴한 행위라 할 것이다.

연안 김씨 집안을 소개하다 곁길로 새버렸지만, 연안 김씨 문중에는 아픔이 있다. 아버지 김흔에 이어 부자 문과 장원의 수재인 문중의 대표 인물 김안로(金安老) 이야기다. 문중에서는 김안로가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의 무고로 억울하게 죽었다 주장하나, 정사는 김안로를 권간(權奸)으로 묘사한다. ‘간신 김안로 권력을 쫓다’라는 어린이용 역사책도 있다. 1527년 초 동궁의 은행나무에 머리를 불로 지진 쥐[灼鼠]가 걸렸다. 동궁 즉 왕위 계승자인 세자를 저주한 나무 조각도 함께.

대역죄나 다름없는 사건에 왕위 계승 서열 2위인 복성군(福城君)과 생모 경빈 박씨(敬嬪朴氏)가 혐의를 뒤집어썼다. 폐서인(廢庶人)됐다가 결국 사약을 받은 모자의 억울함이 밝혀진 것은 5년 뒤였다. 범인은 부마인 김희(禧)와 아버지 김안로였다. 김안로는 작서의 변을 일으킨 후 좌ㆍ우의정으로 권세를 누리며 정적들을 죽이고 학덕 높은 이언적 등을 귀양 보냈다. 당시 세간에서는 김안로 일파를 정유삼흉(丁酉三凶)이라 불렀고, 사서는 유자광, 임사홍, 남곤, 송익필, 이이첨 등과 함께 그를 조선의 대표적 간신으로 꼽는다. 오늘의 정치인이여, 역사를 두려워하라!
 

행랑채에서 정면과 측면이 함께 비스듬하게 보이는 사랑채. 사랑채 건축의 정제미와 웅장함이 동시에 잘 드러난다.
행랑채에서 정면과 측면이 함께 비스듬하게 보이는 사랑채. 사랑채 건축의 정제미와 웅장함이 동시에 잘 드러난다.

김구철 시민기자 (경기대 미디어영상학과 교수)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연예 24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