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이름을 ‘월드메르디앙’, ‘힐스테이트’, ‘로얄팰리스’, ‘아크로타워’ 하는 식으로 붙이는게 유행하던 무렵이다. 나이 지긋한 엄마들이 모임을 갖으면서, “아파트 이름이 어려워 아들집 찾아가기도 힘들다”고 푸념을 했다. 그때 한 사람이, 그게 뭐 어렵냐며 영어로 된 아파트 이름을 줄줄이 읊었다. 같이 있던 친구들이 “역시, 이대 나온 여자라 다르네” 해서 웃었다고.
우리나라 아파트 이름은 너무 어렵다. 영어를 왜 이렇게 많이 쓰는 건지 지나치다. 근래엔 더 길어졌다. 외국어 단어 두 세개를 나열해 무슨 뜻인지 알 수도 없고 기억하기도 힘들다. 예전엔 ‘래미안’,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했던 것이 ‘래미안 라클레시’, ‘래미안 아델리체’, ‘힐스테이트 프레스티지’, ‘힐스테이트 센트럴파크’, ‘푸르지오 더프레티움’, ‘푸르지오 클라테르’ 하는 식으로 길어졌다.
아파트 단지에 개명(改名) 바람이 불고 있다. 아파트는 브랜드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지고, 곧 집값 문제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예전에도 법원 소송까지 불사하며 이름을 바꾸는 경우가 있었지만, 아파트 브랜드 중요성이 높아지면서 더 거세지는 추세다. 이름을 바꾼 후 집값이 오르는 사례가 나오면서 ‘브랜드가 곧 집값’이라는 인식이 강해졌다. 대형 건설사들도 치열한 분양시장에서 고급화 이미지를 통해 프리미엄을 높이고 차별화를 꾀할 수 있어 ‘네이밍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엠코타운 센트럴파크’와 ‘상도엠코타운 애스톤파크’는 지난 7월 각각 ‘힐스테이트상도센트럴파크’, ‘힐스테이트상도프레스티지’로 이름을 바꿨다. 울트라건설이 지은 서울의 ‘서초에코리치’는 울트라건설을 호반건설이 인수한 이후, 호반의 아파트 브랜드인 ‘호반써밋’으로 바꿨다.
공공·임대아파트 브랜드는 이름 지우기에 한창이다. 대구의 ‘칠성 휴먼시아’는 지난 6월 ‘대구역 서희스타힐스’로 이름을 바꿨다. 분양한 한국토지주택공사(LH) 브랜드 ‘휴먼시아’ 대신 시공사 서희건설 브랜드로 바꾼 것이다. 수원의 ‘LH해모로’와 부산의 ‘범일LH오션브릿지’도 LH를 떼고 ‘해모로’, ‘오션브릿지’로 개명했다. 임대 아파트를 많이 짓는 부영도 마찬가지다. 위례신도시의 ‘위례부영사랑으로’는 지난해 ‘위례더힐55’로 이름을 바꿨다.
아파트 이름은 주민 80%가 찬성하고 구청 승인을 받으면 바꿀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는 핵심 자산이고 어느 브랜드에 사느냐에 따라 심리적 만족도까지 달라지다 보니 이름 바꾸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파트 품격과 가치는 이름만으로는 부족하다. 부실 공사를 안하고 조경이나 시설 업그레이드 등 내실이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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