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세월가면 잊혀질까
[삶과 종교] 세월가면 잊혀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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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칫집에서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들이 있다.그중에 대표적인 음식이 아마도 ‘사라다’ 곧 과일 샐러드가 아닐까 싶다. 특별한 요리법이 필요하지 않고 재료도 쉽게 구할 수 있어서 누구나 손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과일 샐러드. 특별한 비법이 없어도 누구나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오랫동안 이 과일 샐러드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하고 또 서민적인 음식으로 자리매김해 오고 있다. 이처럼 특별한 요리법이 없이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마도 흉내 낼 수 없는 마요네즈만의 독특한 맛과 특성 때문이 아닐까 한다.좋아하는 과일 재료들을 먹기 좋게 썰어 고소 짭조름한 마요네즈를 넣어 버무리기만 하면 새콤달콤 고소달달한 과일 샐러드가 완성되니 말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잔칫집에 가신 날이면 뒷동산에 올라가 마냥 어머니를 기다리곤 했다. 기다리던 버스가 도착하고 몰고 왔던 흙먼지가 한바탕 지나고 나면 어머니가 조심조심 내리셨다. 그때마다 어머니 손에는 항상 그렇게 꽁꽁 싸맨 짐 보따리가 들려져 있었다. 힘겹게 들고 오신 짐 보따리를 어머니는 마루에 걸터앉아 푸셨는데, 그때마다 동생이랑 필자는 배고픈 강아지들처럼 마냥 보따리를 쳐다보며 군침을 몰아 삼키곤 했다. 한번은 어머니께서 까만 비닐봉지에 하얀색 과일 무침을 내주셨는데 마요네즈에 사과와 밤, 건포도, 땅콩, 감 등을 넣어 비벼 만든 음식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이 음식을 어머니께서는 어디서 듣고 오셨는지 ‘사라다’라고 부르셨다. 시골 소년에게 짭조름하면서도 새콤달콤 고소달달한 사라다의 맛이란 그야말로 표현할 수 없는 환상의 맛이었다. 그 후로 어머니께서 동네잔치에 가시는 날이면 어김없이 사라다를 챙겨오라는 신신당부를 몇 번이고 되풀이했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께서 치매로 돌아가시기 몇 해 전,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사라다를 다시는 맛볼 수 없을 것 같아 어렵게 청한 그날에도 어머니는 늘 그랬던 것처럼 큰 양푼에 사라다를 잔뜩 버무려주셨다. 거짓말처럼 그날 그 사라다가 어머니의 마지막 사라다가 되었지만, 때로 삶이 무겁게 느껴질 때나 힘들다고 느껴질 때 양푼에 내주셨던 어머니의 사라다는 필자의 마음 안에 여전히 그립고 먹고 싶은 음식으로 남아있다.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추억 속의 음식들. 오랜 시간이 흘러갔어도 문득 그것은 여전히 우리의 군침을 돌게 하고 마음 어딘가에 묻어둔 그리운 사람들을 떠올리게도 한다. 불현듯이 옛날 추억 속의 음식이 떠오른다면 그것은 음식을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지금의 삶이 조금은 버겁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애타게도 그때 그 시절 그 음식을 해준, 나를 믿어주고 힘이 되어준 사람이 그립고 보고 싶어서일지 모른다.

피곤하고 지칠 때나 삶이 힘겹게 느껴질 때는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추억 속의 음식을 한번 맛나게 먹어보는 건 어떨까? 조금은 넉넉한 마음으로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생겨나지 않을까 싶다.

인생의 맛은 참으로 다양하다. 귤처럼 새콤하다가도 단감처럼 달달하다. 사과처럼 달콤하다가도 아무 맛도 없이 그저 시원한 맛에 먹는 오이 같기도 하다. 때로 힘을 줘서 깨물어야 하는 딱딱한 날밤 같을 때도 있다. 이처럼 다양한 인생의 맛들도 마요네즈와 섞이고 어우러지면 맛좋은 과일 샐러드가 될 수 있겠다 생각하니 문득 삶이 아름다워진다.

김창해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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