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지철이 경호실장에 오른 건 1974년이다. 육영수 여사가 사망한 지 일주일만이다. 박정희 대통령에겐 저격에 대한 공포가 컸다. 그 공백을 충성으로 파고들었다. 경호실장 방에 새로운 표어를 붙였다. ‘각하를 모시는 것이 국가를 지키는 것이다’. 스스로 작사한 충정가를 경호실 단가로 삼았다. ‘…딛으시는 걸음 걸음마다…이 한 목숨 다 바쳐 충정으로’. 유명 목사들을 초청해 조찬 기도회도 열었다. 역시 ‘대통령을 위한 기도’였다. ▶1979년 부산과 마산에서 소요사태가 일어났다. 유신 철폐ㆍ독재 타도를 외친 시위였다. 그에게 대통령에 대한 반기는 곧 국가에 대한 반란이었다. 그만의 충성 어린 해석이 나온다. ‘대통령에 반기를 든 불순 세력의 난동’이라며 ‘군을 투입해 쓸어 버리면 해결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시위 현장을 점검한 중앙정보부는 달랐다. ‘체제에 저항하는 심각한 민란’이라고 보고했다. 박 전 대통령의 선택은 차지철의 해석이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도 ‘차지철’이 있었다. 장세동 경호실장이다. 5공 청문회에서 보여준 충성심이 유명하다. 전두환으로 가는 청문은 그를 넘지 못했다. 모든 혐의를 ‘내가 했다. 각하는 모르신다’며 막았다. 결연한 의지도 불태웠다. ‘어른(전두환)을 구속하려 들 경우에는 내가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막을 것이다’. 노태우 정권과 막후 협상도 그에게 맡겨졌다. 전 전 대통령에게 남은 유일한 충성동이였다. ▶과한 충성은 왜곡을 부른다. 민심은 주군의 입맛에 맞게 각색된다. 민심의 분노가 일부의 일탈이 되고, 정권의 위기는 곧 마무리될 소란이 된다. 급기야 주군은 파멸한다. 박 전 대통령은 총에 맞아 사망했고, 전 전 대통령은 역사의 죄인이 됐다. ‘각하가 곧 국가’라던 차지철, 죽어가는 주군을 두고 화장실로 도망갔다. ‘역사 수레바퀴에 깔려 죽겠다’던 장세동, 주군이 구속됐지만, 대통령에 출마했다. 다 부질없는 충성 놀이다. ▶청와대 참모는 대통령 측근이다. ‘대통령이 곧 국가다’라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과한 충성이 언제나 문제다. 여론을 가리고 대통령을 파괴한다. 그 증명의 역사가 ‘차지철ㆍ장세동 역사’다. 그런데도 사라지지 않는다. 과한 충성이 여전히 권력 주변을 떠돌고 있다. 왜 그럴까.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을까. 그 추론 역시 ‘차지철ㆍ장세동 역사’에 있다. 막강한 권력이다. 충성의 대가로 주어지는 두툼한 선물이있다. 그래서 지금도 저러는 것 같다. 김종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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