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삶과 종교]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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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가을의 정취를 일깨우는 고운 빛깔의 단풍이 지역사회를 물들이면서 사뭇 다른 이국적인 정취를 느끼게 한다. 같은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도 각자의 색깔이 다르고 모양도 달라서 인간들과 같이 각자의 개성을 지닌 모습을 보여주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에 취하게 된다. 이러한 낙엽이 보여주려는 의미는 스스로에게는 내년의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안식을 준비하는 것이고, 기나긴 겨울을 준비하는 중생들에게는 동면의 시간을 재촉하는 것이며, 주위에서 경쟁하였던 동료에게는 일정한 휴식을 제안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식과 지혜를 함께 갖춘 인간은 어떠한 관점에서 낙엽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일까? 단순하게 1년에 한 번씩 일어나는 주기적인 흐름이라는 생각과 자연에 순응하는 자연의 법칙이 작용한다고 인식하며 또는 과학이라는 지식의 창으로 분석하는 과정도 존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생각의 차이에도 고운 빛깔의 낙엽을 보면서 성내고 분노하는 것을 접고서, 잊고 있었던 주위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되새기는 때일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부처님의 성품을 지니고 있으므로 진리를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최고의 목적은 해탈이라고 말하는데 진리를 깨달았다는 뜻이다. 진리를 번역하여 ‘도(道)’ 또는 ‘법(法)’이라고 부르는데 이것에는 ‘세상의 이치를 간직하고 있다.’라는 의미와 통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서 상통한다는 이치는 무엇이고, 범부인 중생일지라도 상식이라는 범주의 도덕과 가치는 모두가 알고 있다는 뜻인데, 어찌하여 삶을 꾸려가는데 과정에서의 행동은 동떨어지는 괴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 것인가.

그 틈새를 파고드는 미세한 차이는 마음과 지혜를 분리하여 생각하려는 이분법에 있는 것이다. 얼마 전까지도 국무위원 한 사람의 문제로 국가 전체가 혼란과 갈등을 심하게 겪었고 지금도 그에 따른 영향은 진행형이다. 물론 현실의 무능한 정치를 빗대어 비판하려는 것이 아닌 국가를 운영하는 상식을 벗어난 듯한 문제의 본질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한국 주변의 정치적인 상황이 그렇게 여유롭고 평화롭지 않고 갈등으로 치닫고 있고, 또한 세계 각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시점에서 국가를 경영하는 책임 있는 정치인들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근원적으로 중생들은 욕망에 얽매여서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는데 장애를 초래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도덕에 집착하는 욕망이 없다면 축생과 다름이 없는 삶이 이어질 것이고, 진리에 대한 사랑을 거둔다면 인간의 세상에는 무질서와 혼란이 세상에 가득할 것이다. 자연계를 살펴보면 하나의 시작이 다른 시작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는 연기의 세계를 폭넓게 형성하여 가고 있다. 굴러다니는 돌멩이 하나에도 의미가 부여된 것이고, 떨어지는 낙엽 하나에도 우리가 질서라는 이치를 관찰할 이치를 지니고 있다.

겨울을 준비하는 축생들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무심하게 인간처럼 고운 단풍의 정취에 취하여 즐겁게 시간을 보낸다면 매서운 겨울 추위에 많은 고통을 겪을 것이다. 인간은 지혜를 사랑하였던 노력의 결과로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었던 지식과 역량을 갖추었고 눈이 날리는 겨울철에 축생들에게 먹이를 나눌 수 있는 삶의 여유도 갖출 수 있었다. 인간은 이렇게 자연의 질서를 이해하고 질서에 순응하는 삶의 방식을 이끌어 오고 있다.

한국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현재의 정치와 경제적인 상황은 유쾌한 모습이 아니다. 그럼에도, 더욱 씁쓸한 것은 나와 타인이 더불어 살아가려는 노력보다는 사회의 패러다임이 점차 이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이다.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자연계의 질서와 인간계의 질서를 다시 한번 뒤돌아보면서 삶의 그림자를 관조하였으면 한다.

세영 수원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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