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카페] 의리의 사나이 베토벤과 루돌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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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 또는 연주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어려운 일이다. 극소수의 고명한 아티스트를 제외하고 경제적으로 독립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다. 세계의 많은 음악가는 빈궁함을 피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다. 베토벤 당시의 18세기나 오늘의 21세기, 그 사정은 별다름이 없다.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등 당시의 내로라 하는 작곡가들에게 지속적인 후원자들이 없었다면 오늘날 그들의 작품이 아름답게 연주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하이든은 에스터하치 후작과 평생 파트너로 작품활동을 하고 살았다. 그런 이유로 방대한 문헌이 생성되었다. 하이든의 음악은 전체적으로 행복하며 그 음악 속에 여유 있는 유머와 독자적인 재치가 넘쳐 흐른다. 특히 말년의 음악들은 오히려 밝고 명랑하다.

어떤 수사나 찬사도 어울리지 않는 천재 모차르트는 지기스문트 대주교와의 갈등과 지원의 파트너십을 유지하다 결국은 독립하여 모차르트가 원하는 음악 세계를 꾸며 나갔지만, 말년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을 피할 수 없었다. 예술가로서의 독립은 어려운 고행임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베토벤에게는 특별한 스폰서가 있었다. 오스트리아의 왕자인 루돌프 대공(후에 모라비아의 대주교가 됨)은 베토벤의 천부적 재질을 인정하고 15년간 피아노와 작곡을 사사하는 제자가 된다. 경제적지원은 물론 베토벤의 남다른 성격으로 인한 정치적 문제들을 감싸주고 경제적 후원을 지속적으로 하였다. 독야청청, 안하무인, 그리고 자신 외에 어떤 권위도 인정하지 않았던 베토벤은 유아영세로 시작하여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에도 신부에게 병자 성사를 받았다. 그의 장례도 가톨릭 식으로 하였다. 그러나 베토벤은 종교의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자세를 거부하였다.

심지어 “예수는 그저 십자가에 매달린 유대인일 뿐”이라는 신성모독발언으로 비밀경찰의 사찰대상이 되는 등 사회적인 문제도 끊이지 않았다. 베토벤과 루돌프 대공과의 인간적인 관계는 긴밀하고 의리 속에서 이루어져 나갔다. 베토벤은 그를 위해 많은 곡을 헌정하였다. 베토벤의 마지막 20년은 처절한 신체적인 어려움 속에서도 루돌프 대공의 관대함과 전폭적인 신뢰 속에서 마감할 수 있었다. 베토벤의 걸작인 피아노 협주곡 4번과 5번은 루돌프 대공을 위해 작곡되었다. 3개의 피아노 소나타, 현악 4중주, 특히 ‘고별 ’ 피아노 소나타는 베토벤의 루돌프 대공을 향한 지극한 개인적 애정을 표현하는 대표작인 사례이다.

두 사람의 우정과 의리는 1819년 루돌프 대공이 대주교로 즉위할 때 그 절정에 이른다. 베토벤은 그의 취임식에 쓰일 ‘장엄미사’를 작곡한다. 인류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만든 ‘합창교향곡’을 작곡하는 같은 시간에 공을 들인 이 작품은 그 깊이와 난이도가 평범함을 뛰어넘어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한 작품이다.

베토벤 탄신 250주년을 맞아 그가 남긴 작품들을 새로운 접근으로 공부하며 베토벤의 천재성을 마음껏 키워준 후원자들, 특히 루돌프 대공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크다. 21세기를 보내는 각박한 현대사회에서 베토벤의 곡을 마음껏 연주하게 길을 열어주는 ‘오늘의 루돌프 대공들’ 에게 사랑과 신뢰와 존경을 보낸다.

음악의 역사를 돌아보며 필자는 그나마 행복한 예술가임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민간오케스트라를 꾸려 나가면서 다양한 후원자들을 선한 파트너로 삼은 축복은 연주활동을 폭넓게 할 수 있는 극소수 예술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이어진다. 자칫 당연하게 여길 수 있는 연주활동의 밑바닥에는 보이지 않는 후원이 양분의 뿌리가 됨을 절실하게 인지한다. 그들이 없었다면 넘치는 열정의 음악을 표현할 놀이터가 없었을 것이니….

함신익 심포니 송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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