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자유롭다는 것, 그것은 공동체 속의 자유며 이것이 진정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인간의 자유’다.
길을 걷다 보면 간혹 엄마에게 혼나는 아이들이 있다. 엄마는 무언가를 하지 말라고 하고 아이는 그 금지를 하고 싶다고 한다. 아이는 자유로운 것을 원하지만, 엄마는 아이를 위해 ‘자유’를 통제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중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엄마의 통제처럼 다양하고 많은 규율을 경험하게 되고, 그것이 의식에 자리 잡혀 스스로 자신의 자유를 조절하게 된다. 의식이 구조화되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의 자유를 일정부분 양도하게 된다. 인간은 본래 타인과의 관계에서 법률ㆍ도덕ㆍ문화 등에 종속될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이 이 인간 간의 관계에서 스스로 자유를 자율적으로, 때로는 타율적으로 양보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기준들이 법과 윤리, 그리고 문화에 위탁됐기에 우리는 우리의 자유를 역설적으로 지키게 된 것이다.
인간의 진정한 자유는 홀로 버려진 상태에서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자유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보장받고 규율되는 것이다. 타인과의 관계가 가족을 만들고 마을을 형성하며 사회와 국가를 체계화시켜왔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는 대화해야 하고 설득하며, 우리가 지켜야 할 기준들을 만들어온 것이다.
이 관계로 형성된 공동체, 이것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는 하나의 그릇이다. 이 공동체 속의 자유로 우리는 진정한 인간이 되며, 우리는 인간다운 자유를 섭취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우리의 자유는 야생 벌판의 자유일 수 없고, 공동체라는 테두리 속의 자유로운 인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극단적 자유주의가 외치는 공동체를 넘어서는 자유는 인간의 자유가 아닌 자기만족적 야생의 자유로 치우치게 될 것이다.
공동체의 규율을 거부하며 자기만의 자유를 지나치게 외치는 목소리들은 외딴 섬의 조난자처럼 자연 상태의 자유로 가야 할 것이다. 그런데 외딴 섬에 표류하게 되면, 구조되기를 바라며 연기를 피워 조난 신호를 보낸다. 그는 자연 상태에서 자유를 만족해하지 못한다. 그는 인간이기에 규율과 보장이 양립하는 자연의 자유가 아닌 ‘인간의 자유’를 갈망하는 본성을 뿌리칠 수 없다. 타인들이 그리운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자유’를 위해 자유민주주의 이념을 악용하며, 구시대 유럽 야경국가의 극단적 자유를 그리워하는 기득권의 목소리들은 이제 자제돼야 한다. 기득권도 공동체 내에 존재하기에 기득권이 되는 것이다.
염종현 경기도의회 더불어민주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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