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돌아온 부국원 괘종시계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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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 팔달구 교동에 100년 가까이 된 ‘부국원(富國園)’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지어진 2층 콘크리트 건물, 옛 부국원이다. 당시 유행하던 신고전주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로 삼각형의 아치형 박공지붕 등 독특한 외관이 멋스럽다. 부국원은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곳’이란 뜻이다. 그 나라가 당시는,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다. 종자와 비료 같은 물품을 판매하던 ‘주식회사 부국원’이 사용하던 건물로, 식민지시대 일제의 농업 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유산이다.

부국원 건물은 해방 후 1952~1956년 수원 법원과 검찰 임시청사로 사용됐다. 1957~1960년에는 수원교육청이, 1974년에는 공화당 경기도당이, 1979년에는 수원예총이 사용했다. 그러다가 개인에게 팔려 1981년부터 오랫동안 박내과 의원으로 쓰였다. 박내과는 이후 서울로 진출했고, 병원이 떠나자 한 인쇄소가 들어서 간판을 바꿔 달았다. 그 간판이 건물의 마지막 명패가 됐다.

개인 소유였던 건물이 개발로 인해 2015년 철거 위기에 놓이자, 일제강점기 수원 역사가 담긴 건물을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면서 수원시가 매입해 복원했다. 옛 부국원 건물은 2017년 10월 등록문화재 제698호로 지정됐다. 수원시는 이 건물을 근대역사문화 전시관으로 재탄생 시켰다.

최근 부국원에 경사가 났다. 부국원의 벽걸이 괘종시계가 80여 년 만에 돌아온 것이다. 일본 야마토사 제품(1938~1939년 제작 추정)의 태엽장치 시계인데 상태가 양호하다. 수원 영통에 사는 이모씨가 시계를 비롯한 부국원 관련 유물 140여 점을 시에 기증했다. 유물 중엔 ‘부국원 화재해상보험 주식회사’가 발행한 보험증서, 지역농회와 거래한 농산물 내역이 담긴 거래 검수서, 부국원 야구부 운동기구 구입 영수증, 부국원 수취 엽서·봉투, 우표도 있다.

이씨는 1926년부터 1940년대 후반까지 부국원에 근무했던 故 이OO씨의 손자다. 수원 출생인 이씨 할아버지는 신풍초등학교와 화성학원(수원고 전신) 졸업 후 1926년 부국원에 입사해 20여 년간 근무했다. 할아버지는 성격이 워낙 꼼꼼해 근무하는 동안 주고받은 서류를 버리지 않고 모아뒀고, 해방 후 부국원이 문을 닫자 집에 보관했다.

1996년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엔 이씨가 유품을 보관했다. 이씨는 얼마 전 옛 부국원 앞을 지나다 전시관으로 바뀐 사실을 알았고, 부국원 관련 유물이 적은 것을 보고는 할아버지 유품을 기증하기로 마음먹었다. 한 시민의 기증으로 할아버지 유품이 빛을 보게 됐고, 부국원의 유물이 풍부해졌고, 시민들은 귀한 볼거리가 생겼다. 감사한 일이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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