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원전사고, 대책 서두르자] 수도권도 대응체계 마련해야

中 산둥성 원전참사… 인천·경기·서울 ‘방사능 사정권’

지난 10월 29일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단주리에서 열린 ‘2019 한빛 방사능방재 연합훈련’. 지진으로 한빛원전 5호기 내 문제가 생긴 상황을 가정한 훈련에서 홍농읍 주민들이 임시구호소인 영광스포티움으로 들어가기 전 신체오염 여부를 검사받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전라남도 영광군 영광읍 단주리에서 열린 ‘2019 한빛 방사능방재 연합훈련’. 지진으로 한빛원전 5호기 내 문제가 생긴 상황을 가정한 훈련에서 홍농읍 주민들이 임시구호소인 영광스포티움으로 들어가기 전 신체오염 여부를 검사받고 있다.

2016년 개봉한 영화 판도라는 역대 최대 규모의 강진으로 일어난 원자력발전소 폭발 사고를 주제로 방상능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영화를 본 관객의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원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웠다는 호평과, 전문지식이 없는 시민에게 불안감만 심었다는 비판이 있다.

영화 내용의 현실성을 떠나 원자력발전소는 실재하며 불행한 사고는 예고 없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1986년에 소련(현 우크라이나)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사고, 2011년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사고는 세계 역사에서 가장 불행한 원전 사고로 기록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중국이 동남부에 원전 135기 가동을 추진 중인 만큼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도 원전 사고 피해범위에 들어간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전이 있는 경상남도, 경상북도, 전라남도 외에도 인천·경기 등 수도권 시민을 위한 원전 사고 발생 대응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 한빛원전 5호기 방사능 누출 시뮬레이션

2019년 10월 29일 오전 9시 55분께 전라남도 영광군 홍농읍 계마리.

전남 신안군 남서쪽 70㎞ 해상에서 규모 7.5의 강진이 발생했다.

지진이 발생한 지 5분이 흐른 10시께 전남 영광 홍농읍 계마리에 있는 한빛원자력발전소는 혼돈에 빠졌다.

한빛원자력발전소 주제어실에는 지진 경광등이 요란하게 울렸고, 발전소 직원들은 비상 상황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갑작스러운 강진으로 한빛원자력발전소에 있는 한빛 5호기에 균열이 생겼기 때문이다.

한국수력원자원 한빛원자력본부(한수원)는 이때까지만 해도 한빛 5호기 배관에서 발생한 균열과 방사선 누수를 막을 수 있을 것으로 봤지만 분단위로 이어지는 여진에 한빛 5호기 내 균열은 점차 확대됐다.

발전소 직원들이 한빛 5호기 내부를 확인한 결과 상황은 예상보다 심각했다.

오전 10시 2분께 한수원은 비상요원을 소집하고 관리구역 내 작업자에 조치를 취한 뒤 결국 백색비상령을 발령했다.

원자력발전소의 방사선 비상은 방사선 누출로 긴급한 대응조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발령한다.

백색비상은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어난 사고 등으로 방사선이 새어 나올 때 영향이 시설 내 국한할 때 이뤄지는 조치다.

한수원은 백색비상령을 발령함과 동시에 정부 기관에 현 상황을 보고했다.

전남도청 초기대응반(사회재난과) 직원들이 수습을 위해 현장에 출발했고, 영광군은 백색비상에 따라 필수요원을 비상소집하고, 현장상황을 모니터링했다.

인근 함평군, 장성군, 무안군, 고창군, 부안군도 비상사태에 따라 초기대응팀을 꾸려 준비에 나섰다.

홍농읍에는 백색비상 상황에 따른 주민행동 요령 마을방송이 흘러 나왔다.

현장 지휘센터가 피해 상황과 한빛 5호기 내부 문제에 집중하는 사이 여진은 거대한 해일을 동반하며 전남 영광군의 작은 마을을 덮쳤다.

오전 10시 40분께 비상디젤발전기에서 기름이 흘러나오면서 불이 났고, 이어 RCS 저온관 1B 배관손상으로 냉각제가 누설됐다.

원자로격납건물 내부 압력도 계속 증가하면서 일촉즉발의 위기 상태에 놓였다.

오전 11시 10분께 한수원은 청색비상을 발령하고 발전소 부지 내에 있는 주민 이동을 명했다.

인근 무안·함평·장성·고창·부안군 주민의 휴대폰은 잇따라 날아오는 재난문자로 쉴새없이 울리고 있었다.

같은 시각 행정안전부, 원자력안전위원회,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한국원자력의학원, 전라남도, 전라북도, 군당국, 경찰, 소방, 교육청에도 비상이 걸렸다.

뒤늦게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은 정부가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계속된 여진에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오후 12시 30분께 한수원 비상요원이 발전소 내부 열교환기 연결배관 플랜지 정비 중 냉각재가 새어 나오면서 방사능에 오염됐다.

노심 과열방지용 열전대 온도는 354.4℃까 치솟았다.

오후 12시 40분. 한수원은 방사능이 발전소 부지 밖으로 퍼질 것으로 보고, 적색비상을 발령했다.

한수원이 적색비상을 발령한 그 때 한빛 6호기에도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이 일어났다.

한때 미래 에너지로 불린 원자력은 그렇게 재앙으로 돌아왔다.

지난 10월 29일 전남 영광군에서 열린 ‘2019 한빛 방사능방재 연합훈련’에서 의료진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갑상샘방호약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지난 10월 29일 전남 영광군에서 열린 ‘2019 한빛 방사능방재 연합훈련’에서 의료진이 청소년을 대상으로 갑상샘방호약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수도권 원전 사고 대비 기우 vs 기본

중국은 동남부 해안을 따라 대규모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중국 산둥성에 있는 아시아 최대 원전 하이양(Haiyang)은 2018년 10월부터 가동 중이다.

이처럼 동남부지역에만 135기 원전 시설이 가동하거나 들어설 예정이다.

문제는 중국 동남부지역에 있는 원전 시설이 수도권과의 거리가 최대 500㎞에서 가깝게는 300여㎞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산둥성 등 동남부지역은 지진이 잦은 곳으로 언제든 원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대규모 강진으로 원전사고가 나면 인천·서울·경기도 등 수도권 시민은 방사능 노출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의 분석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인천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은 중국 원전 사고에 대비한 매뉴얼이 전무하다.

원자력안전위원회 등 정부 주요 부처는 ‘중국 원전 사고’를 가정한 훈련에서조차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이 있는 수도권 지방자치단체를 제외하고 있다.

‘법적 훈련 의무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수도권 지자체를 훈련 대상에서 배제하고 있는 것이다.

원안위만의 문제가 아니다. 수도권 지자체에게 원전은 남의 일이다. 원전 사고는 우리와는 상관 없는 일이라는 생각이 팽배하다.

하지만 체르노빌과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보면, 원전이 없는 수도권이라고 방사능 피해로부터 예외일 순 없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당시에서 피해 범위가 500㎞를 넘어갔기 때문이다.

인천 등 수도권에서도 전남 영광, 부산 고리, 경북 월성 등 원전 시설이 있는 지역처럼 원전 사고를 대비한 매뉴얼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원전 학계 한 관계자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피해 범위를 보면 500㎞가 넘어갔다”며 “원전 사고는 피해가 단순히 그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광범위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원전과 중국 등 인접국에서 대규모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인천, 경기, 서울 등이 안전지대라고 할 순 없다”며 “확실할 순 없지만 수도권이 피해 범위에 들어갈 확률이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원전 시설이 있는 지역처럼 수도권도 중국 원전 사고 등을 대비한 훈련과 재난대책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원전 학계 한 관계자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를 보더라도 바람을 따라 방사성 물질이 이동해 원전이 없는 지역까지 큰 피해를 입힌 전례가 있다”며 “중국에서 원전가고 발생해 방사능이 누출된다면 수도권 등 국내에도 영향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행 법과 매뉴얼에 수도권 방재 훈련 상황이 없더라도 모든 상황을 가상한 민방위 훈련을 통해 보완이 가능하다”며 “원전 사고는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혹시나 하는 재난에 대비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강정규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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