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수능 필적확인 문구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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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능에서는 수험생의 부정행위 방지를 위해 필적을 확인한다. 답안지에 필적 확인란이 있어, 주어진 문구를 기재토록 하고 있다. 14일 시행된 2020학년도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너무 맑고 초롱한 그 중 하나 별이여’였다. 박두진의 시 ‘별밭에 누워’에서 인용했다.

필적 확인은 2005년 6월 모의평가 때부터 도입됐다. 2004년 치른 2005학년도 수능에서 대규모 부정행위가 발생하자 수험생 본인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서다. 첫 문구는 윤동주의 ‘서시’ 중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었다. 부정행위 같은 부끄러운 일 없이 시험을 치르라는 의미로 읽혔다. 필적 확인 문구는 수능 출제위원들이 정한다. 필적 확인에 필요한 기술적 요소가 담긴 문장 중 수험생에게 용기와 힘을 줄 수 있는 문장을 선택하고 있다.

2006학년도 수능 필적 확인 문구는 정지용의 ‘향수’에서 따온 ‘흙에서 자란 내마음 파란 하늘빛’이었다. 이 문구는 2017학년도에 한 번 더 사용됐다. 2007학년도 수능 때는 같은 시 첫 구절인 ‘넓은 벌 동쪽 끝으로’가 활용됐다. 정지용은 필적 확인 문구에 가장 많이 인용된 작가다.

2008학년도는 ‘손금에 맑은 강물이 흐르고’(윤동주의 ‘소년’), 2009학년도는 ‘이 많은 별빛이 내린 언덕 위에’(윤동주의 ‘별 헤는 밤’), 2010학년도는 ‘맑은 강물처럼 조용하고 은근하며’(유안진의 ‘지란지교를 꿈꾸며’)였다. 2011학년도는 ‘날마다 새로우며 깊어지고 넓어진다’(정채봉의 ‘첫 마음’), 2012학년도는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황동규의 ‘즐거운 편지’), 2013학년도는 ‘맑은 햇빛으로 반짝반짝 물들이며’(정한모의 ‘가을에’)가 제시됐다.

이어 2014~2016학년도는 각각 ‘꽃초롱 불 밝히듯 눈을 밝힐까’(박정만의 ‘작은 연가’), ‘햇살도 둥글둥글하게 뭉치는 맑은 날’(문태주의 ‘돌의 배’), ‘넓음과 깊음을 가슴에 채우며’(주요한의 ‘청년이여 노래하라’)였다. 2018학년도는 ‘큰 바다 넓은 하늘을 우리는 가졌노라’(김영랑의 ‘바다로 가자’)였다. 지난해엔 김남조의 ‘편지’ 중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였다. 유난히 어려웠던 수능을 치른 응시생을 다독인 문구였다.

수능일은 결전의 날이다. 긴장되고 민감해 질 수 밖에 없다. 올해 ‘수능 샤프’가 바뀌는 것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하고, 수능일에 시험 직전 “옆 수험생이 코를 너무 자주 훌쩍여 시끄럽다”는 112신고가 접수됐을 정도다. 필적 확인 문구는 아름다운 구절이 많지만 수험생들에겐 별로 들어오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시험이란게 그렇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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