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밥상' 깜장굴부터 밤버무리까지, 만학도의 밥상을 만나다
'한국인의 밥상' 깜장굴부터 밤버무리까지, 만학도의 밥상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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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충청도 한글교실 이야기가 밥상 위에 차려진다.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충청도 한글교실 이야기가 밥상 위에 차려진다.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충청도 한글교실 이야기가 밥상 위에 차려진다.

5일 방송되는 KBS 1TV '한국인의 밥상'에서는 충청도를 찾는다.

# 까막눈 70년 세월 지나 찾아온 봄 – 충청도 한글교실 만학도들

글 한 줄 못 쓰던 이들이 평생 만들어온 음식 요리법을 삐뚤빼뚤 투박한 글씨로 적어 책을 냈다. 어릴 적 한국전쟁으로 피난 시절을 겪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아이 키우랴, 농사지으랴, 일하랴 포기할 것이 너무도 많던 시절이었다. 생계를 짊어지던 우리의 어머니들은 평균나이 75세 만학도가 됐다.

칠순이 넘어서야 다시 배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녀들! 가방 메고 공부하러 가는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데. 까막눈으로 자그마치 7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낸 그 속상함을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이름 석 자 쓰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글을 배우고 뒤늦게 맛본 인생의 참맛. 충청도 할머니들의 공책을 빼곡하게 채운 인생이야기에 귀 기울여본다.

# 태안 만학도들이 깜장굴로 차린 책거리상

태안군 원북면 바닷가는 깜장굴이 제철이다. 깜장굴은 갯바위에 서식하는 자연산 굴로, 그 모양이 작고 까맣다 하여 이름 붙여졌다. 굽은 허리로 굴을 따는 이들은 태안 한글 교실에 다니는 만학도들이다. "이것만 캐고 공부하러 가야 혀" 가장 먼저 굴 밭을 나서는 김선자 할머니는 '보리밭'이라는 시화로 상까지 탄 우등생이다. 가난한 살림에 육성회비가 없어 학교를 못 다녔던 게 한이 되었다. 3년 전, 먼저 손을 내민 김은숙 선생님과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살아온 세월 중에 지난 3년이 가장 행복했다는 김선자 할머니. 오늘은 선생님께 선물 같은 밥상을 차릴 예정이다. 선생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굴을 따던 제자들도 모두 모였다. 옛날 서당에서 학동들이 책 한 권을 다 배웠을 때 음식을 장만하여 훈장님에게 대접하던 '책거리상'인 셈이다.

오전에 캔 깜장굴에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어 버무린 '깜장어리굴젓'은 물론이요, 싱싱한 간자미회를 막걸리에 치대 '꼬독꼬독'하게 만든 다음 온갖 채소와 양념장을 넣어 버무린 '간자미회무침' 등 푸짐한 한 상을 차린다.

이들이 이토록 선생님을 챙기는 이유는 올겨울을 마지막으로 초등과정 졸업을 앞두었기 때문이다. 중등과정을 배우려면 읍내까지 가야 하는데 다리가 아파 갈 수가 없다.

# 천안 한글 교실 4총사가 차리는 겨울 보양식

천안 한글 교실에는 손발 척척 맞는 4총사가 있다. 이들은 서로 살아온 세월도 간직한 아픔도 비슷하다 보니 어느새 절친이 됐다. 시간 날 때마다 모여 맛있는 음식을 해 먹고 이야기를 나눈다는데. 겨울이 성큼 다가온 지금, 큰언니 이묘순 할머니를 중심으로 올겨울을 든든히 보낼 보양식을 만들어 먹을 참이다.

겨울이면 빠질 수 없는 늙은 호박은 나박나박 썰어 뭉근하게 끓여준다. 여기에 삶은 팥과 밀가루 반죽을 넣어주면 추억의 맛을 간직한 '호박범벅'이 완성된다. 여기 '듬성듬성~ 넌칠넌칠~'하게 썰어야 맛있는 별미, '통배추겉절이'도 더한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크기로 대충 어슷어슷하게 썬다는 충청도 사투리 '넌칠넌칠' 어감만으로도 입맛이 돈다. 손질한 배추에 비법 양념과 홍시를 넣어 버무리면 달달하면서도 감칠맛이 남다르다.

한글을 배우고 양념통에 있는 글씨도 읽고, 목적지를 묻지 않고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다는 어르신들. 새로운 세상을 사는 것 같아 행복이 넘치는 천안 만학도 할머니들의 밥상을 만나 본다.

# 보령호에 가려진 섬, 빙도에서 맛보는 갯내 가득한 밥상

보령호에 안쪽에 숨어있는 작은 섬. 민물과 바닷물이 섞여서 흘러 겨울이면 얼음이 둥둥 떠다닌다고 하여 빙도(氷島)라 부른다. 지금은 보령방조제 건설로 육지가 되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바닷물이 드나들며 넓은 갯벌이 펼쳐지던 섬이었다. 평생 어부로 살다가 농부가 된 빙도 주민들은 가끔 배를 타고 나간다.

이제 민물이 흐르는 보령호지만 오늘은 숭어가 잡혔다. 바닷물과 민물을 오가는 기수어라 종종 보령호에 나타나는 반가운 손님이다.

옛 실력 발휘해 회를 떠서 고추장 양념에 버무리면 완성되는 '숭어회무침'은 오랜만에 맛보는 별미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빙도에서 빠질 수 없는 음식이 있다. 갖은양념으로 간을 한 육수에 늙은 호박과 대하를 함께 끓인 '대하호박찌개'가 그 주인공. 시원하고 달달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뭍에서 살다가 53년 전 배를 타고 시집온 유성금 할머니는 7남매의 장녀로 태어나 동생들 돌보느라 배움의 때를 놓쳤다. 칠순이 넘어서야 한글 교실을 다니며 그 한을 풀고 있다는데. 글을 배워 곡절 많은 자신의 인생사를 기록하는 게 할머니의 목표다.

바다와 갯벌은 오래전에 사라졌지만, 여전히 집마다 말린 생선이 걸려 있고 밥상에는 해물이 빠지지 않는 빙도의 갯내 가득한 밥상을 만나 본다.

# 공주 한글 교실을 만든 13년 차 만학도의 인생 참맛

공주시 유구도서관에 매주 한글 교실이 열린 지 10년이 넘었다. 가장 처음 한글 교실을 만든 주인공은 김익한 할머니이다. 어렸을 적 아버지가 딸은 학교를 안 보내도 된다며 싸리문을 잠가 버렸고, 시집와서도 6남매를 낳고, 시누이 아이들 셋까지 기르느라 배움은 계속 늦어져 갔다.

아이들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나서야 공부를 시작했다는 김익한 할머니. 13년 전 칠순이 넘은 나이에 한글을 배우고파 무작정 도서관 문을 두드렸다.

사실 그녀가 그토록 한글을 배우고 싶었던 이유는 따로 있다. 한평생 돌아가신 오빠의 호적으로 살아왔기 때문. 제 이름으로, 제 나이로 살지도 못하는 것이 배우지 못한 자신의 탓으로 느껴졌다는데. 이제는 자식들에게 편지도 쓸 수 있고 자신을 사랑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매일 흙 부뚜막에서 도시락 아홉 개를 싸던 지난날. 가난한 살림에 변변치 않던 도시락이었지만, 자식들이 가장 좋아하던 음식은 '튀각'이다. 고추, 다시마, 싸리순, 가죽나무순 등 한 해 수확한 것들은 틈이 날 때마다 말려두었다가 겨우내 튀겨 먹는다.

'적당히' 말려 '알만치' 튀겨내는 게 비법이다. 여기에 설탕과 소금까지 솔솔 뿌려주면 완성된다. 밤 요리도 곁들인다. 밤을 절여 담근 '밤깍두기'와 찹쌀에 밤, 은행, 대추 등을 버무려 찐 '밤버무리'까지 공주에선 밤도 좋은 반찬이 된다. 한평생 식구들의 매 끼니를 챙기며 쌓은 지혜와 정성이 가득 담긴 밥상을 맛보러 간다.

'한국인의 밥상'은 오늘(5일) 오후 7시 40분 방송된다.

장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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