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한국에서 40년, 한센인을 돌본 스페인 신부

지난주 사단법인 ‘존경ㆍ배려 모임’ 연말 행사가 대전에서 있었는데, 이 자리에 경상남도 산청에 있는 성심원 원장 유의배(74세, 루이스 마리아 유리베) 신부가 초청됐다. 파란 눈의 스페인 출신으로 1980년 이곳 한센인 마을에 들어온 지 40년, 이제 머리는 백발이 됐다. 성심원은 나환자라 일컫는 한센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현대의학이 한센병의 완치에까지 이르는 수준에 이르렀으나 여전히 그들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한센인들을 돌보며 그들과 함께 40년 삶을 같이해 온 유의배 신부는 경상도 사투리가 섞인 우리말로 ‘행복하다’며 활짝 웃는다. 그는 한국어뿐 아니라 한국의 음식, 문화 모든 것이 한국화 되어 있었다. 깊숙한 산골에 자리 잡은 성심원은 소록도 다음으로 규모가 큰 한센인들의 마을이다. 유의배 신부는 처음 한국말이 서툴러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소외받는 사람들에 대한 사랑 앞에는 통하지 않는 것이 없었다.

그는 한센인들과 같은 식탁에서 식사했으며,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손발이 되어 주었다. 심지어 한센인들과 얼굴을 비비기도 했다. 심한 병을 앓는 이들에게는 함께 밤을 새우며 간호하는 등 온몸을 던져 그들을 보살폈다.

무엇보다 주위 사람들을 감동시킨 것은 한센인 마을 사람이 죽었을 때 직접 자신이 팔을 걷고 염을 해주는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을 그는 마다치 않고 한 것이다. 이렇게 그의 손으로 염을 한 사람이 40년 동안 600명 가까이 될 거라고 한다. 그런 이유로 그는 2002년에는 아산사회복지재단 사회봉사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2016년에는 적십자사가 주는 ‘인도장 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최근 한 TV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들에게 해 준 것이 없습니다. 그들과 함께 있었을 뿐입니다.’ 겸손하고 의미 깊은 말이다. 자선은 물질적인 것보다 그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다. 진정으로 소외된 이들과 함께 할 때 인간 유대의 깊은 에너지가 솟아나기 때문이다.

우리가 거리를 두었던 한센인들을 스페인에서 온 파란 눈의 신부가 40년이나 함께 살아온 것이 감동을 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 한센인들은 죽을 때에도 임종을 지켜주는 유의배 신부님이 곁에 있어 편안히 눈을 감는다고 한다. 마지막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함께하는 것이다.

그날 모임은 밤 9시가 되어서야 끝났는데 그는 대전에서 잠을 자지 않고 먼 길 산청으로 서둘러 떠났다. 성심원 가족들이 기다린다는 것이다. 감히 누구도 그를 만류 할 수가 없었다.

지난주 서울 관악구청은 사회적 충격을 안겼던 ‘탈북자 모자 아사(餓死)’사건을 종결짓고 이들 모자의 장례를 치렀다. 한모(42세) 여인과 어린 아들이 지난여름 관악구 한 임대아파트에서 굶어 죽은 것으로 보도 된 지 108일 만이다.

이들이 발견된 것도 죽은 지 2개월 후, 어떻게 이렇게 우리 사회의 관계가 단절된 것일까? 자유를 찾아 탈북한 모자의 최후가 그렇게 굶어 죽는 것으로 끝날 수 있을까? 산청 산골에서 40년을 한센인과 함께 살아온 스페인 신부가 ‘함께’를 강조한 말이 새롭게 느껴진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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