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대] 강화 선원사지(禪源寺址)
[지지대] 강화 선원사지(禪源寺址)
  • 이연섭 논설위원 yslee@kyeonggi.com
  • 입력   2020. 01. 06   오후 7 : 51
  •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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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선원사(禪源寺) 절터가 있다. 남한에 현존하는 고려시대 사찰터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대몽항쟁 당시 고려대장경 목판을 조각하던 곳으로 추정되는 절터다. 문화재청은 학술적ㆍ역사적 가치가 크다며 1977년 선원면 지산리 692의5 일대 6천930㎡, ‘강화 선원사지’를 사적 제259호로 지정했다.

선원사는 고려시대 몽골 침략을 받아 강화도로 도읍을 옮긴 후 1245년(고려 고종 32) 당시 최고 권력자였던 최우가 창건한 곳이다. 강화도 피난 당시 국찰(國刹)의 격을 갖던 사찰이었으며, 충렬왕 때에는 임시 궁궐로도 사용했다. 이곳에 ‘대장도감(大藏都監)’을 설치, 현재 해인사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판각하고 일시 보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실제 조판 장소였는지에 대해 학계 논란이 있다.

고려시대의 선원사는 순천 송광사와 함께 2대 선찰(禪刹)로 꼽혔으나 고려 왕실이 개경으로 환도 후 차츰 쇠퇴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왕조실록에는 1398년(태조 7년) ‘임금이 용산강에 거둥 하였다. 대장경의 목판을 강화의 선원사로부터 운반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판각한 장소라는 기록은 없지만 선원사에 팔만대장경이 보관됐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안타깝게도 이후의 기록은 없고, 절터도 흔적을 찾기 어렵다.

1976년 동국대 강화도학술조사단이 지표조사를 통해 몇 개의 주춧돌과 보상화무늬 전돌, 범자(梵字)가 새겨진 기와, 지붕에 얹었던 잡상 등을 확인했다. 1996년부터 2001년까지 4차례 발굴조사 결과, 독립된 건물지 21개소와 부속 행랑지 7개소가 확인됐다. 중앙부 대형건물지에선 삼존불을 지탱한 것으로 보이는 불단 유구가 확인됐고 소형 청동탄생불, 금동나한상, 탄화된 사경편 등의 유물도 나왔다.

동국대 박물관은 발굴 조사를 통해 현 사적지가 절터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들을 찾았으나 이를 입증하는 고고학적 발굴 성과는 얻지 못했다. 발굴작업을 더 진행해봐야 상세한 것들이 드러나는데 20년째 방치되고 있다. 발굴 조사가 멈춰 서니 당연히 유물 등에 대한 고증 작업도 중지 상태다.

대장경판(大藏經板) 작업은 제작 기간이 16년이나 걸리는 등 고려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규모가 큰 국책사업이다. 대장경은 불교라는 종교적 차원을 넘어 역사적ㆍ문화적ㆍ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우리의 소중한 유산이다. 세계가 인정한 문화유산이다. 국가 차원의 발굴 사업 재개와 이미 발굴한 유물 등에 대한 역사적 고증이 시급하다. 세계문화유산 팔만대장경을 어디에서 판각했는지 밝히는 일도 중요하다. 이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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