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高 3 학생’ 정당은 안 나올까?
[변평섭 칼럼] ‘高 3 학생’ 정당은 안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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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하고 있는 A씨는 몇 해 전 여름방학을 맞아 패키지로 중국 여행을 다녀왔다. 처음에는 패키지여행이라 모르는 사람끼리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서로 대화도 나누고 저녁에는 술자리도 갖게 되면서 금세 친하게 되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친목회까지 만들었다.

회장도 뽑고 총무도 선출되는 등 그럴듯한 자생단체가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해마다 해외여행도 하는 등 모임이 잘 운영되었다. 그러나 최근 회장과 총무가 의견 다툼으로 회장파, 총무파로 분열되어 싸우더니 아예 모임을 해산하고 말았다. ‘여행’이라는 공통분모로 쉽게 모였다가 그렇게 쉽게 헤어져 버린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조그만 공통분모만 있으면 단체나 친목회 만들기를 좋아한다. 같은 고향 출신, 같은 학교, 같은 종류의 외제차 소유자 같은 동아리. 군대 동기, 같은 띠 동갑내기, 산악회, 낚시 동호인, 같은 병(病)을 앓은 환자 등 … 끝이 없다.

1945년 해방과 함께 서울에 주둔한 미군 지휘관 하지(John R. Hodge)중장.

그는 1948년 8월15일 이승만 대통령의 새 정부가 출범할 때까지 미군정(美軍政)을 이끌었다. 일본 총독부의 식민통치가 끝나고 미군정이 시작되자 수 없는 정치단체, 사회단체가 우후죽순(雨後竹筍) 생겨났다. 하지 중장은 이처럼 많은 정치·사회단체와의 소통에 무척 골머리를 앓았고, 이승만, 김구 등과도 마찰을 빚었으며 심지어 하지와 이승만 사이에 험악한 인신공격이 오가기도 했다.

이 무렵 생겨난 정치단체로는 여운형이 이끄는 조선 인민당, 김도연 장덕수 등이 이끄는 한민당, 원세훈의 고려 민주당, 김병로ㆍ백관수가 이끄는 조선 민족당, 조선 인민당, 근로 인민당, 남조선 노동당(후에 김일성의 조선 노동당에 통합), 김구, 이동녕, 조소앙이 이끄는 한독당등 10여 개가 넘었으며 유사한 단체, 이를테면 남한 단일 정부수립을 반대하는 김규식ㆍ여운형의 좌우합작위원회같은 것까지 포함하면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니 하지는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대회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했고 필요에 따라 ‘맨투맨’으로 소통을 이어갔다.

일제 식민통치에서 해방된 민족답게 하나로 뭉칠법한데 우리는 정치적 이해관계로 분열하고 합치고 또 분열하는 바람에 민족역량을 결집하는데 실패했다.

이 와중에 김구·여운형이 암살된 것을 비롯하여 송진우, 장덕수 등 지도자들이 잇달아 암살되면서 민족의 분열상은 극도에 달했다.

우리 국회는 제1야당의 극렬 반대에도 4+1이라는 헌정사(憲政史)에 없는 정치협의체를 통해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특히 이번 선거법의 특징은 현직 국회의원도 그 내용을 잘 모르겠다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이렇게 되면 많은 군소정당이 출현하는 이른바 ‘다당제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 국회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등 원내 의석을 가진 정당이 7개인데 앞으로 있을 4월 선거 때까지 50개의 정당이 출현할 수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민주노총도 창당설이 나오고 있고 결혼 정보업체나 핵무장 등을 업고 정당을 만들겠다고 나서기도 하니 어쩌면 같은 패키지로 중국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끼리 친목회를 만들 듯 50개 이상의 정당이 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 선거 연령을 18세로 낮추었으니 고3 학생을 등에 업는 정당이 나오지는 않을까? 그러면 정치 편향 교사들이 고기가 물 만난 듯 좋아할 것이고 분열의 싸움판도 커질 텐데….

해방 후의 정당 난립이 가져올 정치 갈등이 재현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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