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또 한 살에 감사를 품다
[삶과 종교] 또 한 살에 감사를 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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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며 살라고 말만 해왔지 살아오면서 많은 시간 저는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많이 하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 고맙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답사는 예상 외로 짧았다. 40년간의 현직 사목 생활을 마무리 짓는 퇴임 미사이니만큼 신부님을 기억하는 이들이 모여 그간의 노고에 감사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한 길 사목자로 살아오면서 남기고 싶은 말도 많고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을 것이므로 어록까지는 아니더라도 내심 가슴에 새길 만한 무게 있는 말씀 한마디쯤 기대하고 있었다. 그 긴 사목 생활을 해오셨으니 어쩌면 그 긴 삶 중에 있을 법한 극적인 이야기나 기적에 가까운 감동 실화들이 무딘 가슴들을 뻥뻥 뚫어줄 것을 고대했는지 모르겠다.

어쩌다가 그런 상상을 다 했을까.

생각해보면 인생의 끝자락을 향해 갈수록 짧아져야 할 것들이 있다. 그중에 무엇보다도 짧아져야 할 것이 있다면 단연 ‘입의 말’이다. 긴말을 한다는 것은 내가 상대에게 그만큼 말을 많이 한다는 의미일 것이고 짧게 말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상대의 말을 듣는다는 의미에 가까우니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짧게 말하고 잘 들어주는 사람을 더 가까이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마도 이 말은 노파심에서 나오는 말 즉 남의 일에 지나치게 염려하는 마음을 줄이되 너그러움과 푸근함, 관조하는 마음과 넓은 포용력의 지갑을 열라는 뜻은 아닐까 싶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만큼 그만큼 누군가의 덕분으로 살아온 시간은 많았을 것이므로 나이 들수록 겸허하게 그저 감사하고 뭐라도 베풀면서 산다면 이보다 아름다운 나이 듦은 또 없을 것이다. 훗날 나의 깊은 주름살에서는 아름다운 비움과 내려놓음이, 그저 모든 것에 대한 감사함이 묻어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프랑스 여배우 시몬 시뇨레는 어느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으려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봐요, 내 얼굴의 주름살 좀 잘 나오게 해줘요. 나 이거 만드는 데 수십 년이 걸렸다우.” 그녀의 말에서처럼 자신의 주름살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으려면 삶에 대한 그만큼의 철저한 관리가 또한 필요할 것이다. 주름살을 통해 풍겨나는 아름다움은 결코 성형수술이나 지방 제거 수술로는 흉내 낼 수 없는 인생의 값진 대가이다.

지난 일 년, 나에게 허락된 그 많은 시간을 정말 바쁘게 살았는데 내 삶은 몇 뼘의 성장을 더하며 깊어졌을까? 새해를 시작하며 세운, 내 삶의 성장을 위한 다짐과 목표는 몇 년째 버킷 리스트(bucket list)에서 지워지지 않고 재활용을 당하고 있다. 사랑만 해도 모자란다는 시간에 나는 얼마나 많이 부정이 아닌 긍정을, 불평이 아닌 감사를, 미움이 아닌 용서를, 다툼이 아닌 화해를, 그리고 무관심이 아닌 사랑을 선택하며 살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성에 차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열심히 잘 살아줘서 고맙다고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험한 세상살이 그래도 치열하게 살아내느라 정말 고생 많았다고 용기와 위로와 힘이 되는 말을 해주고 싶다. 또 새해를 맞았다. 사느라 어쩔 수 없이 쌓아진 내 맘속의 사금파리들은 다 내려놓고 이제 새 마음가짐과 목표로 다시금 새 출발을 해보자. 누군가의 덕분으로 살았음을 감사하며 새해 또 한 번의 파이팅을 힘차게 외쳐보자. 갈수록 늘어나는 주름살이 부끄럽지 않도록.

김창해 천주교 수원교구 사회복음화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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