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평섭 칼럼] 무서운 싱귤래리티 시대의 권력게임
[변평섭 칼럼] 무서운 싱귤래리티 시대의 권력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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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휩쓴 한국 젊은이들로 선풍적 인기를 얻은 BTS(방탄소년단). 그 멤버의 뷔가 2018년 솔로 곡 ‘싱귤래리티’를 발표했는데 트위터 전 세계 실시간 트렌드 1위를 차지했으며 LA타임즈의 2018년도 최고의 명곡 10선에 선정되는 등 세계를 뜨겁게 달구었다. 평론가들은 깊은 저음과 특별한 퍼포먼스에 각별한 찬사를 보냈다. 특별한 퍼포먼스란 뷔가 마네킹과 춤을 추는 것인데 일찍이 뮤직 비디오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렇게 뮤직 비디오에서처럼 ‘싱귤래리티’는 달콤하고 로맨틱한 것일까? 인간의 마음을 빨아들이듯 속삭이며 낮은 저음으로 다가오는 것이 ‘싱귤래리티’일까? 어쨌든 이 낯선 단어가 방탄소년단에 의해서 뿐 아니라 최근 갑자기 여러 분야에서 회자되기 시작했다.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은 지난 2일 신년사를 발표하면서 ‘싱귤래리티’의 시대가 우리 곁에 와 있고 모든 분야에서 업(業)의 개념, 게임의 룰을 통째로 바꾸고 있다’고 하였다. 재벌 총수의 신년사에서 ‘싱귤래리티’란 말이 절박하게 표출된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도대체 그럼 싱귤래리티란 무엇인가? Singularity의 사전적 의미는 단독, 비범, 색다름 등으로 설명되지만, 인공지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기점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사실 효성그룹 조현준 회장에 앞서 우리 교포로서 일본 최고의 재벌에 오른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싱귤래리티 시대가 가까이 오고 있다고 선언한 바 있다. 손 회장도 조현준 회장처럼 이것이 게임의 룰을 통째로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에 입장을 같이 하고 있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 상황(생각하면 공포영화 같은 시대가 연상되기도 한다.), 우리는 이미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바둑 대결에서 이 바둑 대결에서 보듯 싱귤래리티 시대의 게임법칙은 무조건 상대방을 제압하고 이기는 것이다. 그렇게 설계되고 조정된다. 그래서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이것이 가져 올 부작용으로 인간성이 죽어가는 것을 지적했고 어떤 교수는 인간이 퇴화하는 것을 문제로 제기했다.

모든 것이 상대를 이겨야 하는,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게임의 룰이 인공지능을 통해 진행되면 ‘내가 죽는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이 없어지는 것’그런 끔찍한 가상(假像)이 현실화 된다는 것이다.

정치도 그렇다. 정치의 속성인 권력을 잡기 위한 룰에서 인간성이라든지 정의라든지 하는 것은 없다. 오직 상대방을 제압하고 이기는 룰만 추구하는 것이다. 이벤트, 가짜뉴스, 다수의 위력 등등 특히 올해는 선거를 치르는 데 이 싱귤래리티가 동원되지는 않을까 두렵다. 이미 이와 같은 증세는 여의도에서 그리고 서초동과 광화문에서 벌어지는 것 같다. 오직 상대방을 제압하지 않으면 권력을 잡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나는 없어지는 것’이라는 칼춤과 같은 게임 룰.

사실 싱귤래리티가 아니어도 우리는 이와 같은 게임 룰의 DNA를 가지고 있다. 내 편이 아니면 죽은 자의 무덤까지 파헤쳐 부관참시(剖棺斬屍)를 했고, 노론이 집권을 놓칠까 사위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두어 죽이는 잔인한 아이디어를 영조에게 제안한 장인도 있지 않은가(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 그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라를 구한 영웅 충무공 이순신도 당쟁의 칼춤에 제물이 되었고….

증오와 갈등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제압해야 우리가 산다는 그 게임의 룰이 소름끼칠 뿐이다.

변평섭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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