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에 모아놓고 영상 한 번 틀어주죠”…실효성 없는 ‘학생인권교육’

“인권교육은 거의 영상물로만 교육했었던 것 같아요. 사실 기억이 잘 안 나요. 학생들에게 쉽게 와닿고 기억에 오래 남는 그런 교육은 아니었다고 생각해요.”

경기도교육청이 전국에서 처음으로 제정한 ‘학생인권조례’가 올해로 10년째를 맞았지만 관련된 ‘학생인권교육’은 실효성 없는 교육으로 전락해 되레 학생들의 시간만 뺏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17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2010년 10월 5일 공포된 ‘경기도 학생인권 조례’ 제30조(학교 내 인권교육ㆍ연수)에 따르면 학교의 장은 학생에게 학생의 인권에 관한 교육을 학기당 2시간 이상 실시해야 한다.

그러나 일선 학교 현장에선 학생인권교육이 강당에서 집합교육을 하거나 외부강사가 한 반에서 대표로 강의하고 나머지 반에서는 중계된 영상을 시청하는 방법으로 이뤄지고 있어 교육적 실효성에 대한 충분한 고려 없이 학생인권조례에 따른 의무 시수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정적인 처리’를 위한 교육으로 전락했다.

도내 A 학교 관리자는 “(학생인권교육의) 구제적인 전략까지 정해놓는 학교들이 별로 없고 조례에서 하라고 하니까 억지춘향격으로 하는 것”이라며 “그러니까 영상자료 한번 보여주고 끝내는 학교도 많다”고 말했다.

현직교사 B씨는 “비디오 한 번 틀어주고, 그냥 그 시간에 제 일을 하거나 다른 걸 한다”며 “(학생들이) 집중도 안하고 그건 교육이 아니고 시간 때우기식 교육”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 설문조사에서도 경기도교육청 학생인권교육의 부실한 운영이 낮은 만족도 수치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연구원이 도내 700여 개 초·중·고등학교 학생 1만4천여 명이 실시한 ‘2019 경기도 학생인권 실태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학생의 57.5%가 학생인권교육에 참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학교급별로는 초등학생의 71.4%, 중학생 49.6%, 고등학생 46.5%로, 학교급별 차이가 매우 컸다.

그 가운데 학생인권교육의 방법이 재미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초등학생의 긍정응답이 82.6%로 가장 높았고, 중학생이 62.4%, 고등학생이 52.2%로 나타나 학교급이 높아질수록 긍정응답이 낮게 나타났다. 또 학생인권교육의 방법에 따른 재미도를 살펴본 결과, 모둠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긍정응답이 82.9%로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토론식 수업(78.2%)이었다. 반면, 영상시청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긍정 응답이 68.3%로 가장 낮았다.

학생인권교육에 참여했던 학생들에게 주로 누가 교육을 진행했는지에 대해 질문한 결과, 초등학생은 담임교사(55.1%)가 가장 많았고, 중ㆍ고등학생은 외부 전문강사(중 56.8%, 고 47.8%)가 진행한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번 설문 및 면담조사에서 학교나 학급별 인권교육의 양적ㆍ질적 차이를 줄이고 학교현장에서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인권교육 운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인권강사 인력풀 구축, 예산 확보, 자료 개발 및 보급 등의 다양한 제도적 지원에 대한 요구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교육연구원 관계자는 “학생인권교육 관련해서 4년(2016~2019년) 동안 참여율 추이를 살펴보면 초ㆍ중ㆍ고 모두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것으로 조사된 반면, 교원들의 98.5%가 학교에서 학생을 대상으로 학생인권교육을 실시하고 있다고 응답했다”며 “경기도학생인권조례는 1학기 2시간 이상의 학생인권교육 실시라는 제도적 기준을 담고 있지만 실효성 제고를 위해 일회성 학생인권 교육에서 벗어나, 교과 연계 등을 통해 학생들의 생활 속에서 이뤄질 수 있는 다양한 학생인권교육을 모색할 시점이 왔다”고 밝혔다.

강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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